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린 뒤 도림천을 따라 채 50미터도 안가 강남아파트 단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름에 '강남'이 붙어 잘나가는 주거지일 듯 하지만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은 정도로 낡고 퇴락한 아파트입니다.
우선 아파트 단지 앞 인도에는 천정 보호대를 씌워놨습니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나온 시멘트 조각이나 돌조각에 보행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막기 위한 시설물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아파트 건물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금이 갔습니다. 건물 하중을 바치는 저층부와 상층부가 뒤틀리거나 어긋나 아파트들이 바로 서있지 못하고 살짝 기울었거나 휘어 있습니다. 내력벽조차 갈라진 채 흉물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어 손이 들어갈 지경입니다.
아파트 내부는 더 가관입니다. 벽과 천정이 틀어진 틈새로 밖이 내다보일 지경입니다. 가느다란 철근은 다 드러난 채 완전히 부식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천정에서 시멘트 조각들이 떨어져 내립니다.
강남 아파트가 지어진 것은 지난 1974년입니다. 이제 35년된 아파트입니다. 오래 되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건물이 요즘 쓰이는 철근 콘크리트 대신 시멘트 블럭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철근의 양과 굵기에 따라 다르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철근 콘크리트는 강도가 세고 건물의 수직적인 중량 외에 횡적 압력(수평적으로 가해지는 힘)에도 잘 버팁니다. 하지만 시멘트 블럭은 자체의 강도도 약할 뿐 아니라 수평으로 가해지는 힘에 특히 취약합니다. 지난해 쓰촨 지방에 지진이 났을 때 피해가 특히 컸던 이유도 대부분의 건물이 이렇게 시멘트 블록을 쌓아올린 건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천만인 아파트에서 총 876 세대 가운데 230여 세대의 주민들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6~7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두가지 의문이 듭니다. 이렇게 낡고 퇴락한 아파트가 왜 아직까지 재건축이나 재개발되지 않고 있을까? 전국이 재개발 열풍에 휩싸여 멀쩡한 집도 허무는 판국에 말입니다. 또 많은 주민들이 왜 이런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영세민 거주지역이라 사업성 없어 개발업자 '외면'
이 아파트 단지의 대부분 세대는 14~16평에 불과합니다. 지어질 때부터 영세한 서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아파트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각 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대지 지분이 채 3평도 안됩니다. 당연히 재개축에 의한 사업성이 높을 리가 없습니다. 한정된 땅에 조합원이 너무 많아 일반 분양을 할 수 있는 물량이 별로 없고 따라서 민간 개발업자들의 외면을 받아온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3년전 가까스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재건축에 들어가나보다 했는데 최근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당초 사업비를 융자해주기로 했던 은행들이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사업비를 끌어올 수 없게 되니 재건축 사업 추진이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그나마 이사갈 돈이라도 있던 3분의 2 가량의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그나마도 없는 영세 거주자들은 이주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눌러살고 있습니다. 들이치는 찬바람이 한데나 진배 없고 배관이 부식해 녹물이 나오는데다 벽과 천정이 허물어져가는 모든 상황을 대안이 없어 감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파트는 96년 이미 재해위험시설 D등급으로 지정돼 특별관리대상에 올라 있습니다. 특별관리대상은 아파트 단지로서는 서울 시내에 단 두 곳이 있는데 그나마 나머지 한 곳은 이미 주민들이 모두 퇴거해 곧 철거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재건축조합은 최근 자체적으로 시설 안전도를 조사한 결과 강제퇴거 명령이 나오는 E등급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수백명의 주민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생긴지라 이런 사실을 쉬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손 놓은 서울시…재건축 해주면 다행, 아니면 할 수 없다?
여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최근 뉴타운을 비롯한 재개발 사업을 촉진하겠다면서 서울시가 수백억원을 지원하고 있다는데 이렇게 시급하고 꼭 필요한 재건축 사업부터 도와주지 않는 것일까요? 또 이 아파트가 있는 강서 지역에는 여러 채의 임대 아파트들이 비어있다는데 우선 강남 아파트 주민들을 이주시키면 왜 안되나요?
서울시 주택국에 물어봤습니다. 강남 아파트를 새로 짓는 것은 재건축 사업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입니다. 재건축은 재개발과 또 성격이 달라서 순수하게 민간사업으로 추진된다고 설명합니다. 낡은 집을 가진 건물주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건물을 새로 지어 자산가치를 늘리는 게 재건축 사업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공공이 개입할 법적·제도적 장치도 없고, 여러 재건축 사업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해명합니다.
일견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식적으로 따져보니 이해를 할 수 없는 점이 많습니다.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도시 기능을 재생시키기 위한 사업인 만큼 가장 중요한 핵심 목적은 건물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거주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재개발 사업을 했을 때 얼마나 돈을 벌 수 있고, 그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얼마나 띄울 수 있느냐 보다는 노후하고 위험한 건물에서 사는 주민들을 좀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에 본령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하는 정부의 태도에는 이런 재개발의 목적이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민간이 돈 되는 재개발, 재건축부터 다 하고나서 이렇게 돈 안되는 지역까지 재건축 해주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얘기 아닙니까?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재개발 사업에 공공의 역할은 없고 민간과 투기만 있다는 비난이 비등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업을 공공이 떠맡아 예산으로 해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각종 재개발 관련 기금이나 민간 융자를 이렇게 사업성이 낮은, 하지만 재건축이 시급한 지역부터 지원해주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가정입니다만 만에 하나 강남 아파트가 무너져서 다량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공공이 민간 개발업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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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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