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정상회담이 열리는 런던에서 최종 타결을 시도했던 한국과 유럽연합(EU)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통상장관회담이 최종 결과물을 내놓는데 실패했습니다.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높아가는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배격해야 한다는 G20개국 정상들의 선언과 맞춰 이에 대한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길 바라면서 최종 회담의 장소와 시간을 런던으로 정했던 한EU 통상당국들의 기대는 일단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2년 가까이 끌어온 한국과 EU간 FTA는 무산되는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협상에 대해 주변해서 관전해온 통상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도출 실패가 협상 '결렬'로 가는 수순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민감쟁점에 대한 EU회원국들간 정치적 의견조율에 실패한 EU협상대표단이 좀더 시간을 벌고 우리측에 압박을 가해 더 많은 것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전략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한국이 쉽게 협상을 깨뜨리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EU 측이 강하게 나간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양측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쟁점은 '관세환급'입니다.
관세환급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 완성품을 수출하는 비율이 높은 한국 등이 수출하기 위해 수입한 원자재나 부품에 대해 관세를 다시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EU는 굳이 유럽 바깥에서 원부자재를 끌어올 필요없이 역내에서 거의 모든 조달이 가능하다보니 칠레와 멕시코 등과 체결한 FTA에서 관세환급 금지를 관철시킨 바 있습니다. 한국과의 FTA에서 이 부분을 내주면 추후 다른나라와의 FTA에서 문제가 생길수 있다며 회원국 일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 등 EU내 파워가 강한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자동차 산업강국이라 더 반대하고 있어 회원국 설득에 난항이 예상됩니다. EU측은 또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가 한국에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FTA 효과에 무임승차 할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세환급에 대한 우리측 입장은 단호한 편입니다.
일단 관세환급이 국내법과 관련된 사항인만큼 EU측과의 협상에 맞춰 고칠 수 없고, 무엇보다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이 이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환급제도가 없어진다면 EU와의 FTA를 통한 관세철폐 효과가 상당히 훼손된다는 겁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 제도가 어제 오늘 도입된 것이 아니고 40년이나 됐고, 경쟁여건에 이미 반영됐다며 상대방을 압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제도로 우리나라는 EU보다 원재로 가공수출비중이 높기 때문에 절실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1만7천여개 기업에 2조 8162억원의 관세를 환급했습니다. 거둬들인 관세의 21%에 달하는 큰 액수입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FTA를 맺는 이유 자체가 수출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측이 관세환급을 양보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보입니다. 때문에 우리측 협상단은 관세환급을 받을 경우 EU측에 내어줄 수 있는게 뭔지 관계부처와 조율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분야를 더 내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양측은 자동차 부품 관세는 즉시철폐, 소형차는 5년내, 중대형차는 3년내 관세를 철폐하기로 약속했지만 현재 유럽 자동차 업계 반발이 확대외고 있는 양상입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는 "불균형한 합의"라면서 OECD 회원국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관세철폐 기한 7년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이부분에 조정이 있을지도 관심입니다.
비록 통상장관회담에서 마무리 짓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EU FTA가 결국은 타결 선언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협상의 99%를 마무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고 양측 모두에게 부담스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결 선언 시기는 EU측이 얼마나 회원국들의 뜻을 잘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에 달려있습니다.
양측은 내부 협의를 거쳐 다시 장관급 회담 일정을 잡을 예정입니다. 되도록 빨리 합의를 도출해 양측 국회나 의회 비준을 거쳐 내년초엔 발효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인데요.
하지만 이런 예정대로 빨리 일이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EU가 내홍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EU순회의장국인 체코 총리가 의회의 불신임을 받고 사퇴하면서 의장국지위가 위태로운 상황 등 회원국간 의견조율이 원활치 않은 상황입니다. 27개 회원국을 보유한 만큼 의견조율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자칫 협상이 길어질 경우 과정이 험난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보호무역주의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G20 정상회의에 맞춰 타결한다는 목표가 꺾인만큼 타결의 동력도 일부 약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질수록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여러 이해집단에서 반대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다자간 협정인 WTO 도하개발어젠어(DDA) 타결이 9년째 지지부진해 양자간 협상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던 EU와 한국간의 FTA, 타결까지는 조금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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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식경제부와 산업계를 취재하는 정호선 기자는 1997년에 경제지 기자로 시작해 2005년에 SBS에 입사했습니다. 좌우명인 '긍정의 힘'과 함께 오랜 경제분야 취재경험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기사로 활약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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