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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그가 기다리는 고도'

극단 산울림의 대표인 연출가 임영웅은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하면 사람들은, 그가 연출한 차범석 원작의 사실주의 연극 '산불'도 있지만 단연 사뮤엘 베케트 원작의 부조리극인 '고도를 기다리며'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30대 초반이었던 1969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 초연으로 무대에 올린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당시 공연계에 임영웅이라는 이름 석자를 아주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 이후 임영웅하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떠오를 정도로 그와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연은 각별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70대 중반의 노 연출가가 된 지금에도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어쩌면 그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임영웅은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조부모는 음악가였던 아들을 일찍 잃은 탓인지 손자가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때 우연히 접하게 된 연극과의 첫 만남이 운명처럼 그를 연극의 길로 인도한다. 아마도 그에게 정해져 있던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일찍부터 연출가로서 재능을 보였다. 상과대학에 떨어지고 서라벌예술대학에 들어간 그는 대학교 1학년 시절 첫 연출 데뷔작으로 전국중고교연극대회에서 우승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사회 첫 발은 연극인으로 내딛지 않았다. 임영웅은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계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생활을 하다 동아방송 피디로 변신했다. 당시 동아방송 방송부장이자 훗날 문예진흥원 사무총장으로 대학로 형성에 큰 기여를 한 최창봉씨가 그를 피디로 전직시켰다. 바로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보면 본격적으로 그가 연극으로 가는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일까? 임영웅 연출은 어떻게 해서 연극 연출가를 하게 되는지 하는 질문에 언제나 '그것은 운명'이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방송국 라디오 드라마 피디로 출발한 그는 장차 그의 연출 활동에 훌륭한 자원이 된 신진 극작가를 비롯해 전속 성우였던 박정자, 김무생, 사미자, 전원주 등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시절 그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장르인 뮤지컬과의 만나게 된다. 고전 '배비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패티 김이 출연해 화제가 된 뮤지컬이자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로 평가받고 있는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년)를 바로 그가 연출했다. 그리고 7,80년대에 들어서도 '키스미 케이트', '지붕위의 바이올린' 등을 그가 연출해 무대에 올렸다. 최근에는 지난해 뮤지컬 '갬블러‘를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당시 권력 실세였던 김종필 씨가 큰 관심을 갖고 후원했다고 하는데, 당시 정부가 북한과의 문화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임웅영은 방송국 생활 4년 만에 방송국을 떠나 극단 예그린으로 옮기면서 그의 연출 본능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전위적 성격이 짙은 오태석의 처녀 장막극 '환절기'를 연출한 그의 연출력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젊은 부부 사이의 애정이 위기를 심리의 좌표위에 설정하는데 매우 적확하게 계산해놓고 있다. 그리고 대사가 싱싱하고 함축적이어서 어느 기성의 아류 같은 인상도 주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특히 생략과 비약이 특징인 오태석의 희곡을 오소독스하면서도 치밀한 분석을 통해 무대 위에 형상화했다는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9년, 당시 프리랜서 연출가였던 그는 한국일보 사옥 신축기념작 연출을 부탁받는다. 그리고 그 무대에 그는 한번쯤 해 보고 싶었던 부조리극인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린다. 당시 사뮤엘 베케트라는 인물이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기도 했거니와 부조리극 자체가 난해하기 때문에 대중성과는 멀어도 한 참 멀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영웅 본인도 희곡만 읽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고 술회했을 정도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연극인들이 항상 말하듯 연극이 언제 한번이라도 전성기였던 시절은 없었다. 그리고 항상 현재가 과거에 비해 더 나빴다. 아마 그때도 역시 연극계는 침체기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생소한 부조리극으로 흥행을 기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이란 예상치 못한 기적이 있기에 더욱 흥미로운 것일까? 공연을 앞두고 사뮤엘 베케트가 그해 노벨상을 수상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으로 베케트의 작품인 '고도를 기다리며'에 관심이 쏟아지고 공연 전 매진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연출가 임영웅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기대에 100% 부응했다. 실제로 막이 올랐을 때 관객과 평단은 박수와 호평을 보냈다. 어렵기만 할 것 같았던 부조리극에서 관객들은 잔잔한 웃음을 얻었고,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리드미컬한 대사와 극의 흐름에서 평론가들은 임영웅 연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후 임영웅은 산울림 극단을 창단하고서 또 다시 창단 기념작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렸다. 임영웅은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에 있어서 지금까지 경쟁자가 없는 국내 1인자로 등극했다. 그리고 드디어 1989년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 초청, 이듬해에는 사뮤엘 베케트의 고향인 더블린 연극제에까지 초청돼 극찬을 받았다. 당시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 현지 신문인 '아이리쉬 인디펜던트'는 '한국의 고도는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대서특필했는데, 이는 임영웅 연출 스스로도 잊지 못할 기억이자 자부심이었다고 술회했다.

1985년 임영웅은 어렵게 어렵게 지금의 홍대 앞에 산울림 소극장을 열었다. 그는 산울림 소극장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다양한 연극을 하며 그의 연출 본능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특히 '위기의 여자', '목소리',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여성들을 주제로 한 연극을 잇달아 선보이고 히트 시키면서 산울림 소극장을 페미니즘 연극의 메카로 부상시키기도 했다.

극단 산울림은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대학로를 지켜오며 올해로 벌써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그 기념 공연으로 한국 페미니즘 연극을 주도했던 것을 추억하기 위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시작으로 다시 여성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임영웅과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도 다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고도'는 흔히 신이나 절대자로 비유 또는 추정하기도 한다. 연출가 임영웅, 연극은 그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삶에 도움이 돼야 하고, 그래서 연극은 언제나 삶과 밀착돼 있어야 하고, 또 그래서 연극은 정직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가 40년째 기다리는 '고도'는 과연 무엇일까?

"고도는 순간순간 다를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 작품 만드는 시점에서 내가 제일 바라고 기다리는 게 무언가 하는 게 그때그때 다르지 않겠어요? 그러나 보편적으로 궁극에는 내가 바라는 게 뭐냐 하면은 순수하게 연출가면 연출가로서만 무대를 만드는데 전력할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런 환경이 이루어지는 날, 이루어지는 사회, 이루어지는 시대, 그런 것이 내가 기다리는 고도라는 거죠. 근데 내 생전엔 그런 시대는 안 올 것 같고 그러나 내 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1934년 서울 출생

1948년 서울휘문중·고등학교 거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서 연극연출 전공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중퇴 1958년 세계일보, 조선일보, 대한일보 문화부 기자 

           동아방송 개국에 즈음하여 라디오 드라마 PD

1966년 한국 최초의 본격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연출

1968년 <환절기>로 국립극단 첫 연출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 한국연극협회 이사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초빙 교수

1973년 한국방송공사 TV연예부 차장

1989년 한국 최초로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참가 및 파리 공연

1990년 더블린연극제에 초청되어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한국 최초)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1994년 폴란드 비브제제국립극장 초청으로 그단스크에서<고도를 기다리며>공연(한국 최초)

1999년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출

2001년 극단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 대표 / 문화관광부 21세기 문화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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