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위기 직후에 편성한 것 보다 두배가 넘는 추가경정예산 계획을 확정했다. 총 규모가 28조 9천억원.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 수립한 추경이 13조 9천억원이었던 점을 비교하면, 이번 추경의 규모가 얼마나 파격적인지 짐작이 간다.
정부가 막대한 추경으로 지원하려는 곳은 급격한 경기침체로 가장 어려움을 겪을 계층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부자 보다는 서민층이 대상인 게다. (그렇다고 정부가 가진 계층에 대해서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정부는 각종 감세 조치를 내놓거나 준비중인데, 수혜계층이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이다.)
이 같은 재정지출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경기 성장률의 회복이다. 정부는 30조 가까운 수퍼 추경으로 우리 경제 성장률이 1.5% 포인트 정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예상하고 있는 경제성장률이 -2%인 점을 감안할 때, 추경이 정부의 목표대로 경기를 이끌어준다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0.5%에서 그칠 수 있다.
정부는 추가로 올해 추진할 계획인 각종 규제완화(감세를 포함해서)와 이에 대응한 기업들의 투자가 뒤따를 경우, 0.5% 포인트의 추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기대'가 공짜는 아니다. 무엇보다 막대한 추경의 재원을 조달하는 게 쉽지 않다. 또 조달이 됐다손치더라도 이는 모두가 앞으로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빚이다. 정부 지출이 증가하면서,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도 나빠질 수 있다. 최근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빼가고 그 과정에서 환율이 급등하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첫번째 넘어야 할 산인 재원조달을 살펴보자. 재원조달 과정에서 지금껏 안정세를 보여온 금리가 오를 공산이 있다. 이 경우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서민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또, 이자의 상승은 기업들의 자금 차입 비용을 높여 투자의욕을 꺾을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확보하고 있는 각종 여유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는 자금이 16조 9천억원에 달한다. 모두 국고채를 발행해 채워넣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고채 발행량은 올해 이미 계획돼있던 물량까지 합해 90조 원이 넘는데, 이는 사상 최대 규모다.
시장에 국채가 쏟아지면 국채금리는 오르고, 시중 금리에도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 정부는 변동금리부 국고채 발행과 국채 인수자금 저리 대출 등의 국채 활성화 대책을 준비중입니다.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는 부동자금을 끌어내 국채 매입을 유도하고, 아예 이참에 국채 시장 규모도 키우고 거래도 활성화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국채가 다 소화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국가채무가 지난해 308조3천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2.5% 수준이었던 것이, 올해는 366조9천억원으로 GDP 대비 비율이 38.5%로 높아진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부담이라는 평가다. 해외 투자자들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도록 국가신인도 관리와 외화유동성 확보에 신경 써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재정적자도 걱정거리다. 올해 51조 6천억원으로 GDP의 5.4%가 예상되는데, 이는 유럽연합이 건전한 재정 수준으로 회원국들에 권고하는 3% 선을 크게 웃돈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번 수퍼 추경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한 대응여력을 크게 훼손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경기침체는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V자형 반등 보다는 침체 기간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U자형 반등이나, 아예 그 기간을 예측하기 힘든 L자형을 띨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 이후에도 정부가 나서 뒷받침해야할 부분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일찍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 나중에 쓸 수 있는 실탄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돈은 흔히 공짜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이나 타이완 정부가 국민 1인당 얼마를 줬다'는 식의 부러운 '탄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헬리콥터로 뿌려지는 그 돈을 추적해 들어가다보면 결국 우리들의 지갑으로 귀착된다.
추경도 결국 국민이 내는 세금을 사용한다. 그 생색을 정부가 낼 뿐이다. 추경이 주는 달콤함 보다 그 막대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통을 겪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을 뒤돌아봐야 한다. 추경이 제대로 쓰이는 지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우리의 지갑이 줄줄 세는 일은 막아야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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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4년 SBS로 둥지를 옮긴 한주한 기자는 현재 경제부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오랜기간 '서울디지털포럼' 핵심 실무진으로 일하기도 했던 한기자는 폭넓은 산업분야 취재 경험과 함께 미국 위스콘신대 석사학위를 받은 경제통입니다.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수준높은 분석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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