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문화재청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우리 내일 브리핑 하나 하려 하는데..."라며 말을 흐립니다.
국보급 유물을 하나 찾았다면서 뭔지는 끝까지 말을 않습니다.
조선 왕조와 관련이 있고, 일종의 조각품이란 말만 합니다.
브리핑은 아침 10시 반이고, 관련 자료는 아침 8시에 보내겠단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안 오면 무진장 후회할 것이란 말과 함께... 도대체 뭘까? 뭐길래 저리도 자신만만할까??
화요일 아침 7시 50분쯤...
계속 메일을 확인하다보니 새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사라진 대한제국의 국새를 찾다' 란 제목...아 쎄다...싶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국새'란 게 그냥 단순한 도장이 아니구나...생각보다 얽힌 이야기들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국새란??
사육신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을 때 승지였던 성삼문이 국새를 붙들고 통곡하자 왕위를 사양하던 척 하던 수양이 성삼문을 노려보았다는 대목...
이런 대목도 있거니와 해서 '국새'하면 진짜 나라의 대사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번에 문화재청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 그렇게만 보긴 어려운 듯 했습니다.
조선의 왕은 다양한 용도에 맞게 다양한 국새를 사용했다는 거죠.
이 때문에 요즘은 국새를 크게 2가지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실무용과 의례용으로 나누는 거죠.
의례용이란 종묘에 왕실(왕, 왕비, 세자 등)의 대를 잇는다는 의미로 놓는 도장을 말합니다.
실무용 도장을 '국새'라 부르고 이 도장은 '어보'라고 구분지어 부릅니다.
실무용 도장은 용도에 따라 나뉩니다.
고종의 예를 들어볼까요?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그 즉위식을 준비한 과정에 대해 보고서를 남겨놨습니다.
'대례의궤'라는 보고서인데요.
여기에 보면 실무용 도장 9개와 의례용 도장 4개 등 13개의 국새를 새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외국과의 외교문서에 사용한 국새가 '대한국새', 고급관리를 임명할 때 사용하는 국새가 '제고지보', 왕의 칙령을 반포할 때 사용한 국새가 '칙령지보'...뭐 이런 식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도장의 정체는?
이번에 공개한 국새는 '황제어새'라고 해서 1897년 만들어진 보고서에 제작 기록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국사편찬위원회에는 이 국새의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만, 사진에는 존재하는 국새.
그 국새가 이번에 발견된 겁니다.
이 국새는 러일전쟁이 터지기 두 달 전인 1903년 고종이 이탈리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도 찍혀있습니다.
고종은 이 친서에서 러-일 전쟁이 터질 경우 나라가 황폐화될 것이기에 이를 막아야하지만, 이를 막을 힘이 없는 약소국 군주로서 열강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을사조약으로 일본에게 외교권을 뺏긴 뒤에도 고종은 독일 황제에게 친서를 보내 '이웃 강대국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져 독립을 위협받고 있다. 귀국이 약자의 보호자로서 본국의 독립을 보장해주길 바란다'며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눈을 피해 열강에 호소문을 보낼 때 사용된 국새인 거죠.
이 국새는 한 재미교포가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장자의 부모가 구입했다고 하는데요.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을 떠나 이 재미교포에까지 흘러들어갔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국새들은 어디로 갔나??
'한반도'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구한말 일본과 맺은 조약에 사용된 국새는 가짜이니 진짜 국새를 찾아 그 무효성을 입증해야 하고~ 뭐 이런 내용이었죠.
실제로 학계 일부에선 한일 합방 당시 사용된 국새는 일본이 맘대로 찍은 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한일합방에 대한 위임장에 사용된 국새는 '대한국새'.
이 '대한국새'야말로 국가의 대사, 외국과의 조약 체결 등에 사용된 국새인데요.
이 국새는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럼 이 국새는 어디로 갔을까요??
순종 실록에 보면 1911년 3월 외교문서에 사용했던 '대한국새'와 각종 국내용 국새 총 6과를 조선총독부에 넘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국새는 갯수를 셀 때 '과'란 단위를 씁니다.)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이 일본으로부터 위의 국새 6과에 내각지인 등 2과를 더해 8과를 돌려받았고요.
이걸 우리 정부가 미군정에게 돌려받아 국새와 구한말 조약 문서들을 특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들 국새 8과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난 1954년 6월 8과 중 3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되찾았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단지 6월 28일 경남도청이 있던 부산에서 당시 정부에 이를 넘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했다란 기록만 남아있죠.
결국 이 국새들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전혀 정보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금으로 만들어졌으니 전쟁통에 누군가가 이를 녹여 금붙이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옵니다. ^^:;
국새는 '나라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 문화재입니다.
이들 국새는 지금 어디서 누구의 손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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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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