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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삼도봉美스토리'를 보고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시초와 중간 그리고 종말로 구성된다고 정리했다. 시초는 생성되는 것이며, 중간은 그 생성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뒤 따르는 것이며, 종말은 그 뒤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없는 것이다. 또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인 플롯인데, 플롯을 진행시키는 행동은 반드시 개연성과 필연성에 의해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희극은 비극만큼 철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극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2000여 년 전 말했다.

오랜만에 대학로에 사회풍자적인 연극 '삼도봉미스토리'가 무대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대학로 관객들에게 그 인기를 잃지 않고 있는 '늘근도둑 이야기'는 1989년에 만들어진 작품이고, 역시 영화로까지 만들어져서 유명한 '칠수와 만수' 역시 1990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두 연극 모두 속칭 '연식'이 꽤 된 작품들이다. 그렇다 보니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처럼 한미 FTA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농촌문제를 다룬 풍자극이 창작 초연으로 무대에 올랐으니 관심이 집중될 만 했다.

이 작품은 지난 해 연극 '라이어' 제작사인 파파프로덕션의 창작희곡공모전에서 가작으로 당선된 작품으로 동국대 영화과 출신의 신예작가 김신후 씨가 썼다. 영화쪽 시나리오 일을 해 온 작가는 애초에는 시나리오 대본처럼 썼는데 이를 고선웅 연출이 각색하고 연출해 무대에 올렸다. 관계자들은 김 작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까워서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됐다고 했다. 우선 이 작품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미곡 창고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연루된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그리고 강원도 출신의 농부 4명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형사에게 재연하면서 각자의 사연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 사연은 당연히 농촌의 현실을 담은 농부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참신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각기 다른 출신의 농부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장소적 아이디어인데 그곳이 삼도봉이다. 삼도봉은 경상북도 금릉군,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의 경계에 실재로 존재하는 봉우리이며, 그 곳 정상에는 경상, 충청, 전라 3도민이 세운 대화합기념탑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삼도봉은 극중에서 출신이 다른 농부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참신한 이유가 된다. 삼도봉의 존재 가치는 그 것 뿐이다.

삼도봉, 농부, 농촌, 미곡창고, 쌀, 사투리 등등의 것들이 연상되면서 무대는 시골스런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깨고 극중 무대는 아주 큰 거울이 배치된 검정색 톤의 취조실이다. 재연 드라마를 기본 축으로 삼는 극은 그 재연의 출발점이자 주 무대를 취조실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어둡고 침울하다. 어쩌면 전체적인 주제 의식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데 일조하기 위한 장치였을 지도 모른다.

서울서 온 장대식 형사는 삼도봉 미곡창고에서 발견된 머리만 없는 시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전라도 농민운동가 갈필용, 충청도 마을 이장 노상술, 경상도 노총각 배일천 그리고 강원도 태풍피해 농부 김창출을 취조한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 스타일답게 장대식은 무수히 긴 말들을 차갑고 무감정하게 그리고 빠르게 쏟아낸다. 그리고 4명의 농부는, 역시 고선웅 연출 스타일답게, 대가리니 대갈빼기니 대그빡이니 하는 속어를 입맛에 맞게 차례로 대꾸하며 관객들을 실없이 웃긴다.

드디어 취조는 농부들의 요구에 따라 재연드라마처럼 펼쳐진다. TV속에서 많이 봤던 재연 드라마 형식이 연극 무대에서 펼쳐진다. 극은 모든 이야기를 역순으로 펼쳐 보여준다. 배일천이 미곡창고와서 쌓여진 미국산 수입쌀에 분풀이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노총각이 배일천이 왜 미곡창고와서 해코지하는 지는 또 나중에 보여준다. 농민운동가인 갈필용이 왜 미국산 수입쌀을 불태우기에 미곡 창고에 온 것도 나중에 보여준다. 극은 영화로 치면 회상장면인 플래쉬 백과 재연 드라마인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전개된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마치 수사 과정을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중계방송하면서 사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수사 진행 과정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끌었던 장진 감독의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야기 표현의 방식은 비슷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서로 전혀 다르다. 살인사건을 축으로 놓고 이야기를 밀고 가는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관객들이 풀릴 듯 말듯 한 수사 진행 과정을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감정이입된 관객 스스로도 헷갈려하는 흡인력이 있다. 하지만 '삼도봉미스토리'에서 살인사건은 단지 농부 4명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사건에 불과하다. 역시 그 것 뿐이다. 살인사건은 4명의 농부를 모이게 하는 '시초'였을 뿐 극의 전개를 이끌어가는 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미곡 창고 모인 4명의 이유를 정리해 보면 노총각 배일천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려다 사기 당해서, FTA 시위를 하던 갈필용은 우연히 시위를 막고 있는 전경 아들과 만나서 기쁨을 나누던 중 아들이 곤봉에 맞아 죽어서, 노상술은 행정착오로 30년 살던 집을 잃게 돼서, 김창출은 맨날 태풍으로 농사 피해를 봐서다. 이 중 그나마 미곡 창고에 쌓인 미국산 쌀에 분노를 터뜨릴 만한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갈필용과 그리고 관대하게 보면 배일천 정도일 뿐 사실 나머지 두 인물이 갖는 개연성은 상당히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반말과 존대말을 오락가락 하던 장대식 형사는 그렇게 4명의 사정을 듣고서는 갑자기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결론 짓는다. 결국 '삼도봉미스토리'는 노총각 많은 농촌의 현실을 잠깐 언급하다가 FTA 시위 때문에 죽은 아들을 슬퍼하다가 집 잃고 논밭 잃게 된 농민들을 보여주고 끝난다. 마지막에는 느닷없이 갈필용의 아들과 아내의 혼령이 거울 뒤에 비치며 막을 내린다.

'삼도봉미스토리'는 오랜만에 시사적인 농촌문제를 소재로 했다. 그러나 그것이 코믹하게 또는 진지하게 얼마나 전달됐을까는 의문이다. 또 이 작품이 원래 영상을 전제로 쓰여 진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적으로는 얼마든지 똑같은 인물에서 똑같은 인물의 장소 변경이 가능하다. 그것이 편집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연극무대에서 다 소화하려다 보니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반복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부분에서 음악 효과와 조명 효과가 사용된 점 역시 아마도 영화적 효과를 무대에 옮기기 위한 조치가 아니였을까 싶다.

2천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개연성과 필연성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비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들 뿐 아니라 공연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는 관객이나 시청자들도 역시 부지불식간에 그런 조건을 따져가며 감상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해서가 아니라 그런 조건들이 이야기의 생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삼도봉미스토리'가 앞으로 개작을 통해 정말 농촌문제를 풍자적으로 잘 풀어낸 재미있는 '미스토리'가 됐으면 좋겠다.

삼도봉미스토리 (2009년 2월 동숭아트센터 초연)
극작 김신후
연출 고선웅
출연 서현철, 손종학, 조덕제, 김왕근, 전배수, 김재구, 박명훈, 권태건,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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