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업자를 소재로 한 장르 영화로 이렇게 인간과 인생의 여러 측면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실력이 놀랍습니다.
거기다 계속 심각하게 무게 잡지 않고, 여유 있는 때로는 어이없는 웃음까지 깔아가면서 펼쳐냅니다. 맛있는 섞어찌개 같다고나 할까요.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의 명령에 따라 주교를 암살하는데 성공한 청부살인업자 레이(콜린 파렐)와 켄(브렌단 글리슨)은 보스의 명령에 따라 벨기에의 고풍스러운 도시 브리주로 가서 몸을 숨깁니다. 노회하고 인생의 맛을 좀 아는 켄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관광을 즐기지만기운 뻗치는 젊은 피 레이는 고풍의 맛은 커녕 따분하고 지루해 합니다. 그러던 차에 레이는 난장이가 등장하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데….
며칠 뒤 영국에서 날아온 헤리의 메시지는 켄에게 레이를 처치하라는 은밀한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레이가 주교를 암살할 때 조직의 규칙을 어기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죠. 이때부터 영화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중년세대와 젊은 세대, 명분과 실리, 명령의 잔혹함과 인간적인 연민, 조직의 규칙이라는 '똥폼'의 파국과 생명의 신성함 등 인간사를 둘러싼 여러 측면의 갈등과 대립이 펼쳐집니다. 굵직한 기둥 줄거리를 세우고 등장인물들을 배치하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촘촘하게 엮어내는 시나리오가 일품입니다. 감독이자 각본을 쓴마틴 맥도나는 영국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극작가 출신입니다.
정교한 설계도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역시 일품입니다. 특히 이 영화로 2008년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콜린 파렐은 그동안 어정쩡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정쩡하게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이번 영화에서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의 파트너로 나오는 브렌단 글리슨의 연기 또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중년의 고뇌를 제대로 보여주며 콜린 파렐을 받쳐주는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는 듯 한 연민과 배려의 시선으로 젊은 레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깊습니다.
영화 초반, 상반된 두 킬러가 의도하지 않게한 공간에 머물며 벌이는 에피소드들은 '쟤네들 킬러 맞나'싶을 정도로 어수룩해서 소소한 웃음을 주고, 천방지축 레이가 일으키는말썽도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동료를 죽여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 순간부터는 자못 심각한 분위기로 반전되며 영화는 또 다른 묘미를 가져다줍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레이가 실수로 가책 받는 장치는 마지막 결말의 변주된 반복으로 재생되며 주제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총을 들고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남에게 고통을 주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을 행하며 괴로워해야 하는 대다수 현대인들의 딜레마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요. 연극적인 묘미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광장 한곳으로 모으는 연극적인 장치로 인한 작위성이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킬러들의 도시]는끝까지 몰입해서 보기에 좋고 보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 영화 초반, 벤치에 앉아 있는 레이를 응시하는 검은 털 개의 시선 연기가 사람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어찌 그리 자연스럽고 완벽한지 감탄스럽더군요. 어떻게 연기지도를 했고 몇번의 테이크 만에 오케이가 떨어졌는지 궁금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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