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선생이 어제 '태백산맥' 200쇄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했습니다. 100쇄 때는 여러 선후배 문인들을 초청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후배 작가인 김훈 씨 한 사람만 달랑 나왔습니다.
- 200쇄가 된 것은 저한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고 즐거움이지만, 같은 작가들에게 특히 선배작가들에게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그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내 기쁨으로 인해서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축하해달라, 그것은 뻔뻔스러운 일이죠.
조정래 선생은 그러면서 "예술가에게 시기와 질시는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은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제목이 반이고, 또 나머지에서는 첫 문장이 그 반이고... 그래서 첫 장을 쓸 때의 파지가 무한정이라고요. 열 장도, 스무 장도 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백산맥'의 전체 분량이 원고지로 1만5천 장이 넘습니다.
- 그 한 장을 써놓고...완성하고 바라보면 1만5천 분의 일입니다.그 글을 언제 다 쓸까하는 그 공포감이 휘몰려오면 끝이 안보이는 캄캄한 막막한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기가 차지요. 그 때 절망감이라는거..암담한거..
이렇게 조정래 선생은 육필로 한 자 한 자 원고지의 칸을 채워가며 '태백산맥'에서 시작해 '아리랑', '한강'까지 20년을 흘러왔습니다.
40세(아, 나이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할 수 있었다니!)에 시작한 작업을 끝내놓고 나니 어느덧 환갑이 된 겁니다. 남들이 보면 필생의 대작을 그것도 대하소설 삼부작을 끝냈으니 뿌듯하겠구나 싶은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 제가 마흔에 시작했는데 끝나니까 육십이었습니다. 어, 내가 벌써 육십을 먹었나... 그런 자각이 오면서 내 20년은 어디로 가버렸지? 나는 뭐하고 살았지? 그런, 세월을 뺏겨버린 것같은 상실감과 공허감이 너무 크게 닥쳐와 가지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 공허함, 허망함, 텅빈 것 같은 느낌을 벗어나는데 약 2년이 걸렸습니다.
아니, 정말로 별로 해놓은 것이 없어 제가 나이 마흔에 느낀 공허감이 정말로 큰 일을 해놓은 선생이 환갑에 느낀 공허감과 이렇게 비슷해도 되는 겁니까.
선생의 진솔한 말들에게서 위안을 얻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그토록 큰 공허감이 들만큼의 절망과 맞서봤을까하는 자문에 작아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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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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