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했어요. 더군다나 모든 일이 굉장히 어려운시대잖아요. 늘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좀 조심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드는거예요. 왜냐면 어려운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젊은층은 젊은층대로, 노인층은 노인층대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나도 뭔가 잘 그런 마음인데....기분이 묘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문학 작품이라는 것은 그런 것 같아요. 지금까지 경험해온 바에 의하면 저도 젊은 20대 시절이나 이럴 때의 느낌으로 봐도 그렇고 오히려 어려울 때 마음이 어렵고 고달픈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뭔가 의지하게 되고 거기에서 어떤 위로같은 것을 받으려고 했던 마음, 그런 게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내 개인적인 일도 활발하게 풀리고 사회 분위기도 밝고 명랑하고 태평스럽게 느껴질 때 보다는 뭔가 잘 안되고 고단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 문학작품을 의지했던 기억들이 많이 나요. 지금이 그런 것하고 많이 연관이 있나 하는 생각은 하죠.
▲ 설 연휴 때 정당 대표들이 이 책을 봤대요. 그 얘기 들으셨나요?
= 그냥 전해 듣기만 했구요. 오히려 친구들이... 22살에 등단을 했으니까, 작품을 쓴 세월이 25년 되나봐요. 그동안 쭉 같이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를 쓰고.. 좋아해줬어요.
친구들의 화답같은 게 반가웠고 뿌듯했어요. 같이 작업을 쭉 해왔던 친구들.. 잘 모른다고 여겨왔던 후배들... 평소에는 말도 없이 지냈던 그들이 작품 잘 읽었다고... 그 말이 진심으로 여겨졌을 때 어쩐지 기분이 굉장히 좋았구요. 제 마음도 정화되는 느낌이었어요.
▲ 예전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이런 영화 홍보 문구가 많았잖아요. 혹시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한번 원없이 울려보리라'라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요?
= 저는 작품을 쓸 때는 너무 벅차서 작품이 남을 울게 하리라는 예상도 못했어요. 그것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쓰는 일에 빠져 있었던것 같아요.
오히려 다 연재를 마치고 나서 책을 만들기 위해서 교정을 볼 때 저도 모르게 어느 대목에서 눈이 시큰해졌어요. 그래서 '자기가 쓴 글을 읽고 왜 이런담...' 속으로... 왜 이러지 내가.. 혼자 이런 적은 있어요. 그래서 제 책을 만드려 교정 봐주는 분한테 '마음이 그렇다'라고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죠.
▲ 작가님은 그동안 엄마를 어떻게 대해오셨어요? 혹시 소설 속의 그 작가처럼?
= 저라고 다르겠어요? 여느 딸과 비슷해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존재이고, 항상 제가 뭔가 좌절해 있을 때 가장 크게 의존하는 존재이고 특히 저희 엄마 같은 경우는 시골에서 사시면서도 한번도 뭔가에 굽히고 무릎을 꿇어보고 이런 적이 없으신것 같아요. 특히 자식들에 대해서는... 뭐든지 해낼 수 있는 그런 분이었어요. 세월이 흘러서 '아니,어떻게 엄마가 그걸 그렇게 할 수 있었지?' 이런 대목들이 사람으로서 굉장히 많아요.
신경숙 작가가 이번 작품에 건 기대와 자부심은 컸다.
- 우리 한국 문학사에서 어머니 혹은 엄마 그런 분들의 자리가 너무 없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랄지 우리가 너무 잘아는 고리끼의 어머니랄지 그런 작품을 통해서 그런 어머니의 상을 느낄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에서는 단편적으로 흩어져만 있거든요.
물론 박완서 선생의 엄마의 말뚝이라든지 이런 것은 매우 감동적으로 읽은 작품인데, 그래서 아마 처음에 생각할 때는 나도 우리 어머니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욕심이 굉장히 셌었던 것 같구요.
그런게 많이 좌절이 되고 꺾이고 굴절되고 했죠. 그러면서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면서 가까이 있는, 보편적이고 잘 알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게 하는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 하지만 소설에서 엄마를 한 인간으로서 또 도덕적으로 완벽무결한 존재로 그린 것은 아닌가요? 일테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남몰래 불우아동들을 챙기는 모습이랄까...
= 엄마가 그런 것을 안하리라고 생각해요? 시골엄마든 도시엄마든 자기가 자기 마음을 다 바쳐서 성장시켜놓은 자식들이 자기 손을 떠났을 때 그 엄마들이 맨처음...... 그런 것을 못 읽어 내면 할 말이 없는 거고.. .(이 대목에서 나는 졸지에 작가의 깊은 뜻을 못읽어낸 한 사람의 독자이자 기자가 되어 뒷통수가 따가웠다. 사실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마가 따가웠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뭔가 인생에서 한텀이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것은 분명하게 허무예요. 이 엄마한테도 그런게 있었을테고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는 엄마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이 소설에서는 고아원에 가서 엄마가 열심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아이들을 씻겨주고 돌봐주고 이런 일을 다 한 다음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책을 읽어달라고 하잖아요. 그런 아픈 사연이 거기에 끼어 있는거예요. 그런 것을 간과하고 이렇게 얘기를 하면 곤란하죠.
그런 것을 같이 얘기 한거예요. 실제로 보이지 않게 다른 존재들한테 많은 마음을 보태주고 있는 나이드신 엄마들이 많아요. 이 엄마는 완벽하지 않죠. 불운의 시대를 타고났고 학교의 문턱도 못 가고, 그러나 내면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성같은게 팔팔 살아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외한인 나말고도 문학계간지 '문학동네'에서 현직 문창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신수정 씨도 신경숙 작가와 대담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물론 본인의 의견이라고 하진 않았지만. 옮겨본다.
신수정 : 어떤 사람들은 그러기도 하더라구요. 이 소설의 엄마가 현실 속의 엄마 같지 않다고요. 파란 슬리퍼를 신고 발에 피를 흘리면서 돌아다니는 대목도 너무 심한 것 같고, 또 엄마의 말과 행동이 너무 이상화되어 있어 거의 성녀같이 여겨지는 대목도 있었다는거예요. ...
신경숙 : 파란 슬리퍼를 신고 발에 피를 흘리면서 돌아다니게 하는 게 과하다구? 이 소설에선 중요한 상징일 뿐이지만 현실은 더할걸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내다버리는 사람들이 숱한 게 현실이지.
현실이 더 과해요. 엄마의 말과 행동이 이상화되어 있다는 시각도 나로선 동의가 가지않네.
나는 한 시대를 살아낸 일상적인 엄마를 말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껏 생생히 복원해냈어요.
오히려 내가 놀랐던 건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소설 속에서 지금의 자기의 엄마를 발견한다는 독자들의 반응이에요. 작품이란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되지만 그 사이에서 발생한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몇몇 의견이 그 작품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심도있는 평을 대신할 순 없다고 봐요.
인상 비평에 대한 신경숙 작가의 반응이다. 신수정-신경숙 대담에서 옮겨적었지만 나로서는 신 작가의 말투와 현장 분위기가 글에서 튀어나올 듯이 생생하다.
신 작가가 어떤 표정일지, 어떤 목소리 톤일지 슬며시 웃음이 나올만큼.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 대목에서 나는 '디-워' 논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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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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