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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지 않는 '촛불재판 개입' 논란

법원이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고 높은 형량을 주문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대법원이 '부적절한 개입은 없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26일 대법원이 내놓은 진상조사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첫 기소자가 나온 작년 6월19일부터 7월11일까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사건 8건이 모두 한 판사에게 배당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사회적 이목이 쏠린 중요 사건을 경력이 많은 부장에게 맡기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허만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촛불시위자들에게 벌금보다 높은 구류형을 선고하라고 판사들에게 말한 사실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촛불집회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오던 초기에 한해 배당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예규와 배당권자의 적절한 판단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문제 될 만한 사안은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안팎에서는 당시 고위 법관들이 촛불집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촛불집회 사건의 처리 향배가 국민적 관심사였던 만큼 법원 수뇌부가 일부러 초기 사건을 '믿을 만한' 부장판사에게 맡겨 이후 평판사들이 자연스럽게 선례를 따라가도록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많을 땐 하루 수십명의 촛불집회 시위자들이 연행돼 무더기 기소가 예상됐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법원의 초기 집중 배당에 대한 해명은 군색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 밖도 아닌 내부에서 단독판사들이 배당에 문제의식을 느껴 자체 모임을 갖고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에게 건의했다는 점에서 이번 문제를 가벼운 견해 차이로 보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구류형을 선고하라는 발언이 없었다는 점을 당시 즉결심판을 담당했던 8명의 판사에게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사건이 일파만파 번진 상태에서 해당 판사들이 자유롭게 당시 상황을 말했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박근용 사법감시팀장은 "이들 사건에 사회적 이목이 쏠렸던 것일 뿐 특별히 경륜이 많은 판사가 맡아야 할 중요 사건은 아니다. 부장판사가 아닌 일반 단독판사가 담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자체가 배당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송호창 변호사도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점을 법원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원칙대로 배당하는 게 맞다"며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점을 감수하고 몰아주기 배당을 감행할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집시법 위반을 중요 사건으로 분류하는 게 맞느냐는 시각 차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법원은 합의부에서도 의견이 다르면 평판사가 부장판사에게 의견을 어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이번 사안을 항명 파동으로까지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는 내부망에 글을 올려 "안팎에서 사법부 독립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데 대해 법관들이 침묵해서는 안되며 사법행정에 대해 의견 표명을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경 지역 법원의 한 수석부장판사는 "배당 프로그램은 배당권자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도구로 예규에 따르더라도 이번 배당에 큰 무리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번 논란이 자칫 법원 전체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을 조장해 오히려 법원의 독립성을 더욱 침해하는 데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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