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제과점 여주인을 납치한 범인에게 몸값으로 건넸던 수사용 모조지폐가 시중에서 또다시 발견되면서 위폐가 광범위하게 유통됐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특히 납치 용의자 정승희(32)씨가 '돈세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위폐를 사용한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반 시민이 물건 구입을 위해 소액의 위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돼 이런 우려는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에 책임을 져야 할 경찰은 "위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범인 검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위폐 유통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또다시 발견된 위폐 = 25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6시35분께 중랑구 망우동의 모 상점 주인 김모(56)씨가 한 손님으로부터 1만권 지폐 1장을 받고 담배를 팔았다.
김씨는 그러나 몇 분 뒤 돈을 정리하면서 이 지폐가 진폐와 비교해 색이 검고 감촉도 복사용지처럼 미끌미끌한 점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확인 결과, 김씨가 받은 지폐는 경찰이 지난 10일 발생한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의 용의자 검거를 위해 사용한 수사용 모조지폐(일련번호 EC1195348A)였다.
경찰은 일단 김씨의 진술과 상점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분석 결과를 근거로 위폐를 사용한 남성이 정씨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으나 위폐 유통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이 남성의 행방을 찾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이 정씨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위폐 유통 우려 = 이번에 경찰의 수사용 모조지폐가 시중에서 재차 발견되면서 위폐 피해는 2건으로 늘었다.
앞서 정씨는 지난 17일 강남구 삼성동에서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박모(31)씨에게 위폐 700만원을 주고 250㏄ 오토바이를 구입하면서 처음으로 위폐 피해자가 발생했다.
정씨는 하루만인 18일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중고 오토바이 가게에서 현금 400만원을 받고 이를 되팔아 '도피 자금'을 마련한 뒤 잠적했다.
박씨는 돈을 받은 직후 위폐임을 확인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해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위폐 유통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번에 발생한 위폐 유통 사례는 앞서와는 달리 일반 시민이, 그것도 낱장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위폐가 이미 시중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씨가 서울시내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경찰로부터 건네받은 7천만원 상당의 위폐 가운데 상당액을 진폐에 끼운 낱장 사용 방식으로 교묘하게 유통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위폐 유통 손 놓은 경찰 = 위폐의 두 번째 피해자가 나오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경찰은 위폐 유통에 대해 손을 놓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납치 사건을 수사 중인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두 번째 위폐 신고가 접수된 데 대해 "위폐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범인 검거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말해 이번 사태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경찰의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범인 검거 작전에서의 잘못된 대응으로 위폐 유통의 빌미를 제공한 경찰이 사태를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고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다.
또 이번 위폐 유통 사태에 대한 경찰의 공조 수사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양천서 관계자는 "어제 오후까지 상급기관인 지방청이나 관할서인 중랑서로부터 위폐 신고에 대한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해 위폐 신고가 들어온 이후 이틀 동안 공조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범인 검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경찰은 그러나 정씨를 공개수배한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정씨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해 수사력의 한계마저 드러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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