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격전지인 국회 문방위에서는 지난 19일과 20일에 이어 오늘(23일)도 여야 의원들 간에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됐습니다. 문방위가 열릴 때마다 야당의 집중 공세의 대상이 됐던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오늘은 여야 의원들끼리 주고받는 입씨름을 구경하는 관람자가 됐습니다.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보셨겠지만 여당은 방송법등 언론 관련법을 상임위에 상정해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자는 주장을 펴고 있고, 반대로 민주당은 국민적 관심 사안이니만큼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논의를 먼저 하자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미 이런 여야 간의 입씨름은 지난달 여야 원내대표간의 애매한 합의에서부터 예견됐던 일입니다.
방송법등 언론 관련법과 관련해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달 "빠른 시일 내에 최대한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 한다"고 합의한바 있습니다. 당시 여당은 상정시기를 2월로 못 박자고 주장했지만 야당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여야가 서로 편리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애매한 절충안을 만들어냈던 겁니다.
여당은 "빠른 시일 내"를 강조합니다. 2월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상정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합의 처리 한다"가 아닌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 한다"고 했던 만큼 노력해도 안 되면 표결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야당은 "'최대한'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 한다"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합의처리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국민적 협의기구를 통해 쟁점에 대한 절충점을 찾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야 의원들의 입씨름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는 너대로 얘기해라. 나는 나대로 얘기 하련다"를 벌써 한달 째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당과 야당이 왜 이렇게 상임위에서 상정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반복하는 걸까요? 국회법 85조를 보면, "국회의장은 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 또는 회부된 안건에 대하여 심사기간을 저정할 수 있으며 위원회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중간보고를 들은 후 다른 위원회에 회부하거나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입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각 상임위별로 쟁점 법안을 계속해서 상정하도록 시도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의원총회를 소집해서 본회의 하루 전날인 26일까지 상임위 상정과 법안심사를 마무리 지으라고 독려했습니다. 직권상정을 위한 수순 밟기에 나선 겁니다. 야당이 거부해서 상임위에서 더 이상 논의가 불가능한 만큼 국회의장이 국회법 절차에 따라 직권 상정해야 한다는 우회 압박도 계속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장은 오늘도 "국민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때에 직권 상정하겠다"면서 여전히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연시 입법 전쟁 때 여당은 무려 85개의 쟁점법안을 들고 나와서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의장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무더기 강행처리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여야가 협의를 더 해오라며 직권상정의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당은 그동안 상임위 심의 등을 통해 쟁점법안 20개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리했습니다. 또 앞서 얘기한 것처럼 상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더 이상 상임위차원에서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위한 명분을 축적했습니다.
지난 연말 국회 때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했었지만 여당이 의장의 권위를 생각해서 야당에게 많이 양보했던 만큼 이제는 의장도 외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당시 국회의장이 2월에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직권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그런 여당의 처리 수순을 이미 읽고 있습니다. 사회적 여론수렴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며 상정 자체를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상정이 되는 순간 법안 심사 소이에 넘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찌하건 간에 법안에 대해 여야가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찌할 수 없이 신문과 방송의 겸영비율을 서로 조율해 가야 할 것이요, 만일 조율에 실패한다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막을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든 야든 모두 방송법 처리를 놓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당은 먼 미래 디지털 방송시대를 맞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와 당장 일자리 2만여개가 생겨난다는 주장을 되풀이합니다. 반면 야당은 일자리 2만개는 아무 근거 없는 주장이고, 디지털 방송 시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위해서라도 굳이 한두 달 사이에 후딱 해치울 사안은 아니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내보이지 않고 있어 수적으로 우세해도 그리고 상임위에서 어렵사리 상정해 놓는다 해도 본회의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의장이 직권상정에 대한 약속만 해준다면 몸싸움이라도 해서라도 상임위 상정을 밀어 붙였을 겁니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속이 편치는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에 대해 아직 의지가 없어 보여 안심이기는 해도,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원들과 사무처 직원들에게 문방위 몸싸움에 대비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고흥길 문방위원장은 23일까지 여야가 상정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직권으로 상임위에 상정하겠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오늘 여야가 모두 전투 태세를 갖추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일단 고 위원장이 상정을 하지 않고 회의를 끝냈습니다. 이제 모레 예정된 회의가 마지막 고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온 국민이 하루 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 때..
상정을 둘러싼 여야의 입씨름을 보는 국민들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한 택시기사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뭔 얘긴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국회의원들이 죽어라하고 싸워 대기만 하는데 경제 살릴 얘기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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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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