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패트릭 섀인리, 주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15세 관람가)
영화의 무대는 답답한 틀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기운이 꿈틀대던 1960년대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가톨릭 학교입니다. 학교에 첫 흑인 학생을 받는 등 젊은 혈기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오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는 찔러도 피한방울 날 것 같지 않은 냉철하고 완고한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와 대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가 있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가 못마땅하던 차에 제임스 수녀의 확실한 증거는 없이 정황에 근거한 제보를 듣고 플린 신부를 몰아내려는 계획을 차근 차근 실행합니다. 그 혐의는 바로 플린 신부를 흑인학생 성추행범으로 모는 것이지요.
영화 전반부만 보고는 보수적이고 고집 센 교장 수녀와 젊고 개혁적인 젊은 신부가 대립하는 선과 악의 대결이 분명한 갈등구조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흑이냐 백이냐 편가르기가 명확하고 관객들이 곧바로 정의는 우리의 편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설정은 여러 작품에서 닳고 닳을대로 써먹은 진부한 것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정교한 각본으로 이런 진부한 통속을 뛰어넘는 깊은 통찰을 확보하고 이름만 보고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명배우들의 멋진 연기는 이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우리는 하나'라는 명제가 수백번을 죽었다 깨어나고 망했다 살아나도 실현할 수 었는 불가능한 명제처럼 되어가는 것 같은데요. 정치적 입장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법한 '죽음'에 대해서도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과 처방을 내리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보고 듣고 생각해서 만든 자기만의 확고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상대방을 바라보면 알로이시스 수녀가 만년필 대신 볼펜을 사용하고 손톱을 기르는 플린 신부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게 보이듯이 미워하게 되는 거죠.
알로이시스 수녀가 정황으로 판단해 플린 신부를 몰아내려고 실행하는 계획은 주도면밀하고 이에 제임스 수녀는 또다른 확신을 갖고 죄책감을 느끼며 플린 신부를 옹호하고 원장수녀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관객의 선입견이 얼마나 좁은지를 알려주기라고 하듯 새로운 설정들이 확대되며 넓고 깊은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감독은 모든 것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판단까지 내려주고 살짝 교훈까지 얹어주며 관객들이 개운하게 극장문을 나서게 해주는 할리우드적 결말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엑스파일]의 '진실은 저 너머에'처럼 모든 것을 회색으로 남겨두고 그 판단과 결말에 대해서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양한 관객들 몫으로 남겨두지요.
영화를 더욱 멋지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의 명연기인데요. 메릴 스트립은 정말 찔러도 피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혈한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는데 이런 그녀가 후반부에 보여주는 살짝 흔들리는 약한 모습울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정말 내뿜는 에너지가 상당합니다. 아무말도 안하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것 같지만 각각의 상황에 놓인 심리를 완벽하게 보여주는데 낯빛까지 연기에 동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 허우대만 멀쩡하다고 배우 하는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줍니다.
두 거물이 언성을 높이며 맞붙는 클라이막스 장면은 속내를 감추며 탐색전을 펴던 두 사람이 드디어 발톱을 꺼내들어 서로를 할퀴고 헉헉대고 타협하려하다가 애원하는 등 두 인물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인간관계의 다양한 전개를 모두 늘어놓습니다. 두 인물의 대립과 충돌은 집단과 집단, 국가 대 국가로 확대시켜 보아도 좋을만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준 벅]에서 독특한 연기를 보여줬던 에이미 아담스의 천진무구함도 좋고요. 딱 두 씬에 등장하지만 섬찟할 정도의 포스를 발휘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흑인소년의 어머니로 나오는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명연기의 파노라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버릴 수 없는 신념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그 신념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신념이나 세계관이 고정불변인지 아니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인지, 그 변화라는 것은 어떻게 찾아오고 떠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다우트]는 관객들의 손을 가볍게 잡고 부드럽게 떠나지만 깊은 철학적 문제에까지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명품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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