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꺽. 삐꺽. 한발 한발 나무 계단을 딛을 때마다 계단은 마치 내 무게를 힘겹게 견디어내는 것 마냥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삐걱 삐걱. 베이지색 벽은 누렇게 바래 있었다. 군데군데 페인트칠도 떨어져 나가 있었다. 원만한 원통 모양처럼 살짝 휜 계단을 십 여 발자국 만에 다 오르자 유리와 나무로 된 옛날식 현관문이 나를 맞이했다. 손잡이가 있는 부분은 칠이 다 벗겨져 나무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이 저 손잡이를 밀고 당겼을까..... 팔을 내밀어 짙은 황토색 현관문을 살짝 밀었다. 경쾌한 종소리가 딸랑 딸랑, 하지만 이내 곧 끼이익 하는 피곤한 소리를 내며 현관문은 힘없이 밀려났다. 그리고 나무 탁자와 천으로 된 소박한 소파가 다닥다닥 놓인 학림다방. 커피숍이라는 이름보다는 역시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렇게 부르듯 '다방'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학림다방', 그곳은 '솔'음에 맞춰 일제히 '안녕하세요'나 '어서오세요'를 호들갑스럽게 외치며 환영하는 스타벅스나 투섬플레이스와 같은 커피 전문점에 '입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달랑 두꺼운 유리문 하나를 경계로 길거리의 사람들과 부끄럼 하나 없이 대면하고 있는 커피 전문점들과 분명 달랐다. 학림다방 그곳은 손님들을 안내하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길거리의 소란스런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면 거리의 소음이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바로 섞이고, 잠시 뒤 다시 유리문을 열고나서면 또 다시 곧바로 거리의 소음 속으로 재진입할 수 있는 커피전문점, 그곳은 패스트 인(IN) 패스트 아웃(OUT)이다. 이미 밖에서부터 안을 다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그곳에 입장할 때는 아무런 기대감이 동하지 않고 또 나가더라도 별다른 여운 같은 것은 남지 않는다. 들어와서 입장권을 끊듯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고 나갈 때도 커피 쟁반을 들고 쓰레기통 앞에 또 다시 줄을 서야한다.
하지만 학림다방은 달랐다. 동굴 같은 입구에 들어서 나무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면 거리의 소음은 점점 작아지고 대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소리가 나를 길거리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안내해주는 듯 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면서 어느새 나에게는 낯선 곳에 대한 묘한 설렘과 호기심이 생겨났다. 딸랑 딸랑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곡명조차 알지 못하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온다. 천으로 된 소파와 나무 탁자들, 계산대 뒤로 빼곡히 정리돼 있는 레코드판, 그리고 그 위에 설치된 오래된 스피커역시 오랜 세월을 머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 옛날식이구나' 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얼굴들이 떠올랐다. 마로니에 두 그루 있던 서울 동숭동 문리대 주위에서 만났던 얼굴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연극회, 탈춤반, 문우회, 그리고 제일 큰 강의실이었기 때문에 농성장으로 잘 이용된 본 4 강의실. 삐걱거리는 층계 소리가 오히려 정다웠고 피아노 한 대와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인 그림이 붙어 있던 학림다방에는 정치학과의 '초여름 버들'(류초하)이 터주대감처럼 느긋하게 앉아 있었지................... 마로니에가 있던 문리대 교정과 바깥세상의 경계에는 개천 - 이름이 대학천이던가 - 이 흐르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개천을 쎄느 강이라고 불렀고 또 매일 넘나들던 조그마한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했다."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학림다방은 지금의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KFC 붉은 벽돌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 2층. 지금은 아스팔트 대학로가 깔려있지만 당시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개천위로 작은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그 개천을 '세느 강'이라고 불렀고 그 '세느 강'위에 놓인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대학교가 떠나고, 여기 저기 개발되면서 건물이 없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다방이 문을 닫고, 술집이 없어지고, 그리고 그 자리에 호프집이 들어서고, 패스트 푸드점이 장사를 하고, 커피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그렇게 5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나 둘 씩 떠나고 다 변해갔지만 학림다방은 떠나지 않았다. 사장이 바뀌고 일하는 종업원이 바뀌고 다방이라는 이름을 떼긴 했지만 '학림'(學林)이라는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
학림이라는 이름은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축제 이름인 '학림제'(學林祭)에서 유래됐다. 당시 그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학생들은 아예 학림다방을 '제25강의실'이라고 불렀다, 한다. 고 이청준, 김지하, 김민기, 고 전혜린, 황석영, 백기완, 홍세화, 고 천상병, 정동영, 이해찬 등등등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의 사랑방이자 아지트였다, 그곳, 학림다방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학문화는 또 다른 축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낭만주의와 결합하게 되는데, 그것으로써 이 시기 '대학로'의 대학문화적 색채는 완성된다. 서울대 문리대로 대표되는 이런 경향은 자연스럽게 대학로라는 공간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유명한 '학림다방'은 그 공간적 근거지였다. '학림'은 교감과 사상의 우물과 같아서 당대의 대학문화를 형성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주류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어쩌면 한국적 살롱 문화는 '학림'이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김승옥, 김민기, 김지하, 천상병, 박태순, 김중태 등 1980년대에서 오늘날까지 문화계를 좌우하는 인물들이 '학림'의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학림이라는 진지에서 서로 소통하고, 논쟁하고, 창작하고, 공부했다. 당시에 대학을 다닌 이들 치고 '학림'의 문화적 향기와 낭만적 자유주의에 빚지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손동수 문화비평가 www.ar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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