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까지도 과학자들과 종교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은 12일 그에 관한 다소 엉뚱하면서도 새로운 사실들이 공개돼 눈길을 모은다.
다윈은 12살 되던 해에 한 편지에서 자신이 한달에 단 한번 발을 씻었다고 고백했는데, 씻을 도구가 없어서라는 이유로 냄새 나는 자신의 발에 대해 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였던 다윈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자신의 젊은 아들이 실패자라는 생각을 자주 했으며 아들이 갈라파고스 섬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에딘버러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의학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들에 실망해야 했다.
다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사격과 개, 쥐 잡는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나중에 네 자신과 네 가족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고함친 것으로 전해졌다.
다윈이 진화론을 완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멀미가 큰 몫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비글호를 타고 탐험에 나섰던 다윈이 항해 내내 심한 배멀미로 고생해 배에서 지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갈라파고스 섬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진화론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는 것.
다윈은 하마터면 갈라파고스 섬으로 가는 비글호에 승선하지 못할 뻔하기도 했는데 당시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은 자신의 친구에게 함께 항해할 것을 권유했으나, 다윈이 면접을 보러 오기 5분 전에야 그 친구가 거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윈은 아버지의 반대로 비글호에 승선하지 못할 뻔했으나 삼촌의 설득으로 가까스로 항해에 따라나설 수 있었다.
진화론으로 종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다윈이지만 정작 자신은 오랜 세월동 안 기독교인이었으며 항해를 떠나기 전까지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자라 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윈은 하마터면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에게 진화론의 창시자 자리를 빼앗길 뻔 하기도 했는데 1850년 후반에 그는 영국의 자연주의자였던 월러스도 진화론과 유사한 이론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에 다윈은 서둘러 '종의 기원'을 완성했으며 나중에 진화론에 대한 공적을 대부분 그가 인정받았는데 이는 그의 연구 결과가 월러스에 비해 훨씬 자세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윈은 1872년 영국 애버딘 대학의 학장직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생 원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병과 싸워야 했는데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진화론을 창시하고 그 사회적 파장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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