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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권 3선 도전, 하타미는 누구?

오는 6월 12일 이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모하마드 하타미는 이란 개혁파의 기수로 1997년부터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경륜 있는 정치인이다.

하타미는 1997년 대선에서 70%의 득표율을 기록, 보수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던 알리 아크바르 나테그누리 의회 의장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대권을 차지했다.

개혁파의 중심인물인 하타미의 당선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보수파가 권력을 지배해 오던 이란 정치판에 일대 변혁을 가져 온 사건이었다.

당시 그의 압승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의 전환을 바라는 여성과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아야톨라 칭호를 갖는 시아파 성직자가 최고 권력을 휘두르고 대통령은 2인자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이란 특유의 권력 구조로 말미암아 하타미의 개혁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보수 성직세력이 의회를 장악하고 정부의 핵심 요직을 꿰찬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타미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타미는 신선한 개혁정책을 한번 더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77%의 득표율로 2001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이후 공기업 민영화를 비롯한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를 독려하며 다양한 개혁 방안을 모색했으나 역시 보수파의 벽을 넘는 데까지 성공하진 못했다.

하타미 정권은 또 외교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등 대립관계에 있던 미국과 화해를 모색했지만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으로부터 `악의 축'으로 지목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하타미는 3선 연임 금지 규정에 따라 자신의 8년 임기를 꽉 채우고 물러났지만, 경제 실정과 개혁 실패로 보수파에 정권이 넘어가도록 한 책임이 일정 부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란 예즈드의 시아파 성직자 집안에서 출생한 하타미는 이슬람 종교학교인 콤신학교와 이스파한대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직자가 됐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이슬람문화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다 이슬람혁명 후 귀국하고 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하타미는 1980년 이란 카이한 언론재단 이사장으로 발탁된 뒤 1982년부터 11년 간 문화ㆍ이슬람 수호 장관을 지내면서 개혁적 업무 수행으로 눈길을 끌었다.

영화 등 문화활동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언론의 자유신장과 여성의 사회활동을 독려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란 대다수 영화인은 오늘날 이란 영화산업의 발전을 하타미의 공으로 돌린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노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이유로 보수파들의 비판공세에 시달리다 1992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대선 출마 때까지 정치적 공백기를 가져야 했지만 이는 오히려 젊은 층과 여성 사이에 개혁적인 이미지를 굳히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실패한 개혁가'로 불리는 하타미, 이번 대선에서 강력한 후보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꺾고 미완의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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