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명절인 설을 코앞에 두고 일어난 '용산 참사' 보도는 한국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는가를 보여주는 전시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 역시 사건이긴 하지만, 예컨대 살인 사건처럼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 중심으로 보도해야 하는 사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론의 이 사건 보도는 거의 완전히 검찰 수사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서 언론은 화재의 원인과 함께, 민생관련 농성현장에 경찰 특공대를 투입한 것이 적절했느냐, 특공대의 진압작전이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는가, 세입자의 권익을 철저히 무시한 채 진행되는 재개발 정책이 정당한가, 그리고 이번 사태의 최고 책임자는 누구인가 하는 주제들을 깊이 있게 추적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은 시야를 좁혀 화재의 원인, 그것도 화재가 어느 쪽의 책임인가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수사 과정만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인 지난 20일부터 화재원인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는 29일까지 SBS 뉴스는 화재 원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집중적으로 추적 보도했습니다. 검찰이 밝혀낸 것은 망루에 불이나기 직전 계단 통로에 시너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액체가 뿌려졌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런데 지난 23일 뉴스에 따르면 검찰은 농성 자 5명을 구속하면서, 구속 영장에 이미 화재 원인을 화염병으로 지목했었습니다. 뉴스가 전적으로 의존했던 검찰 수사는 결국 농성 자들이 던진 화염병이 화재 원인이라는, 검찰 자신이 세운 전제를 입증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화재의 원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의 어느 선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와 재개발 정책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입니다. 이것은 검찰 수사가 아니라 뉴스가 스스로 추적해야 합니다. 그러나 뉴스는 이와 같은 주제와 관련한 보도도 검찰 수사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찰 대응의 타당성여부는 처음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 속보로는 검찰 쪽 소식에만 의존했습니다. 예를 들면 SBS 뉴스는 지난 23일 참사당시 경찰이 용역업체 철거반원과 함께 진압작전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민주당이 경찰의 무전기록을 공개했는데 경찰은 전면 부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속보는 당시 현장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어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검찰이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지난 27일 뉴스였습니다. 같은 날 뉴스는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에 대해 여전히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용산 참사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검찰 수사 쪽으로 돌린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검찰 수사가 참사의 최고 책임자를 가려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심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뉴스가 수사과정을 집중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밝혀낸 것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뉴스가 이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쟁점들은 모두 놓쳐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사건 당일인 20일 뉴스는 대형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을 배제하고 검찰이 직접 수사본부를 만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이를 두고 경찰의 과잉 진압 여부와 책임 소재를 객관적으로 가려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수사를 맡은 사람은 책임 소재를 객관적으로 가린다는 말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이 뉴스의 객관적인 해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검찰에게 수사를 맡김으로써 편파수사 논란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더 나아가 정부가 믿을 수 있는 검찰 수사 쪽으로 시민의 시선을 돌리자는 의도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도는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조차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시민의 기대수준과 검찰 수사의 한계 사이에 큰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수사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가 어떤 진실을 밝혀내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올 설과 관련한 소식들을 보도한 SBS 뉴스는 교통 상황에 집중했습니다. 24일 뉴스는 설 연휴 첫날부터 내린 눈 때문에 최악의 귀성길이 되었다는 소식, 설상가상으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잇따랐다는 소식들을 전했습니다. 25일 뉴스는 고속도로마다 소통상태가 다르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경부 중부 고속도로는 정체가 풀리고 있는데, 폭설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서해안 고속도로는 마비상태에 빠졌고, 고향방문길을 아예 포기하고 귀가하는 차량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늘에서 본 설 풍경이나 연휴 마지막 날의 분위기와 설 민심을 알아보는 여론조사도 볼 수 있었지만, 뉴스의 80-90%는 교통소식이었습니다. 과거의 뉴스가 명절만 되면 정치인들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뉴스비평이 비판한 적도 있지만, 그런 모습마저 볼 수 없었습니다. 올 설의 화제가 귀성길의 교통난뿐이었던가 라고 생각하게 만든 뉴스편성이었습니다.
올해는 경제침체로 서민생활이 특히 어렵습니다. 설을 전하는 뉴스가 명절이 되면 더욱 힘들어지는 서민생활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문제입니다. 감원의 칼날 아래 방치된 근로자들의 형편은 어떤가, 그들의 소망은 무엇이며, 이들의 고민에 대해 시민사회는 무슨 도움을 준비하고 있는가, 노숙인들은 설날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그들을 향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따뜻한 손길을 뻗치고 있는가를 시청자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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