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부쩍 자주 듣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디자인'입니다. 이제는 '디자인'에서 승패가 갈린다는 말들 많이 하죠.
기아차의 경우는 아예 기업의 색깔 자체를 '디자인 기업'이라며 끌고 가려 갖은 애를 씁니다. 실제로 애플의 성공 요인으로 간소한 디자인의 덕을 무시할 수 없죠. 디자인의 차이로 인해 비슷한 기능의 제품들의 가격 차이가 천지차이로 벌어지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좋은 디자인이란 과연 어떤 걸까요???
여러가지 요건이 있을 겁니다. 전문가들이 보는 것과 일반인들이 느끼는 건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영화나 소설 등을 꼽을 때 평론가나 이른바 식자층에게서 호평을 받는 것과 일반 독자들에게 잘 먹히는 게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 것처럼요.
한국 디자인문화재단이란 곳에선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의 디자인 문화유산을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디자인 유산'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52가지인데요.
여기서 선정된 것들을 보면 과연...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있는가하면 엇? 저런 것도 뛰어난 디자인으로 꼽힐 수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애플의 '아이팟'에 너무 밀려버렸지만, 한때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던 디자인의 대명사 '아이리버', 기업의 이미지 자체를 바꿔버렸던 LG전자의 '초콜릿폰', 서울 올림픽 당시 극찬을 받았던 '잠실 주경기장'과 너무나 친숙한 캐릭터 '호돌이', '둘리', '뽀로로'까지...(사실 전 아기가 없기 때문인지...'뽀로로'란 캐릭터의 위력을 이번에서야 알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유산이라고 하면 '아 그럴만하다'라고 고개들을 끄덕끄덕 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주위에서 언제나 보고 있는 중국집 '철가방'과 때 밀때 언제나 사용하는 '이태리 타월',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자주 보던 '모나미 153 볼펜'의 이름이 올라간 걸 보면 엇? 저게 그렇게 훌륭한 디자인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중국집 철가방...얼마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물건인가요?
'심미성'이란 가치는 철저하게 무시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물건을 한국 현대 디자인의 걸작이라니... 철가방을 디자인 유산으로 선정한 교수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사실 철가방처럼 흔하면서도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물건도 없다. 원래 중국집에선 나무로 된 철가방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배달시 무게와 음식물이 쏟아졌을 때 청결성 때문에 오래 사용되지 못했고, 철거방 다음에 나온 플라스틱 가방은 사출에 드는 대한 비용과 견고성 등의 문제로 일반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철가방은 진화를 완료한 퍼펙트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철가방은 단지 하나의 디자인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소산이라할 만하다.
이태리 타월에 대한 설명도 비슷합니다.
이태리 타월은 신제품 개발 실패에서 나온 일종의 부산물입니다. 1962년 부산의 직물공장 업자가 새로운 타월 만들어보겠다며 이래저래 실험하다 기분 전환하러 목욕탕에 갔는데 이때 실험한 원단으로 몸을 닦다 때가 잘 밀리는 걸 발견하고 세상에 나온 것이죠.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원단으로 만들었기에 이태리 타월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이 조그마한 천 조각 때문에 한국인은 때를 미는 목욕 문화를 갖게 됐으니 이 어찌 위대한 디자인이 아니냐란 거죠.
2002년 월드컵에 누구나 입고 다녔던 'be the reds'란 빨간색 티셔츠. 이건 공식월드컵 공식 티셔츠를 제치고 2천만 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인해 디자인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이 흐름은 2008년으로 이어져 '촛불 소녀'라는 캐릭터를 낳았습니다. 단발머리 교복 차림에 귀여운 표정이지만 입술은 꼭 다물고 오른손은 당차게 촛불을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 작년 중반을 뜨겁게 달궜던 거리의 모습을 너무도 잘 형상화했죠.
이렇게 선정한 것들을 보면 이 분들이 좋은 디자인이란 것을 어떻게 봤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천재 디자이너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건 누가 처음 디자인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건 그 속에 '우리네 삶'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건 투박하건 진정 좋은 디자인이란 거죠.
'아름다움'이란 것 역시...잘 짜여진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투박하거나 정제되지 않았더라도... '삶의 모습'이 담긴 것에서 더욱 풍겨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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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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