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의 이번 중동순방에 동행하게된 저 역시 이 점이 궁금했습니다.
순방의 출발지인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자 총장과 보좌 스탭, 취재진을 실어나를 비행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체 외부에 UN 글자가 선명히 박힌 전용기였습니다.
▲ UN 전용기를 배경으로 한 컷.
방문국에서 븍별기를 내주는 경우도 많지만 이번엔 아랍과 이스라엘을 번갈아 움직이는 일정이다 보니 운신이 편한 유엔기를 택했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아시겠지만 요르단과 이집트를 제외한 아랍국들은 이스라엘과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상호 왕래가 거의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아랍국 방문을 원하는 여행객들은 이스라엘 입국시 여권이 아닌 별도 용지에 비자 스탬프를 받아야 합니다.)
취재진 16명 포함해 50명 가까운 일행을 실어 나를 유엔 전용기는 예상과는 달리 50인승 규모의 자그마한 사이즈로 내부 시설도 소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 유엔기 내부. 잘 보이지 않지만 좌석 아래와 맨 뒤에 보이는 화장실 안에까지 짐이 가득.
막연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에어포스 원' (미국 대통령 전용기) 정도를 상상했던 저로서는 비행기를 확인하곤 약간의 실망감마저 들었습니다.
지난 이라크전 당시 종군 취재차 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호에 탔을 때 위풍당당한 겉모습과 달리 후줄근한 내부를 확인하고 들었던 실망감과 오버랩 돼 슬그머니 웃음도 나왔습니다.
워낙 소형 비행기이다 보니 유엔 사무총장도 별도 공간은 커녕 (다리를 뻗을 공간이 약간 더 긴) 맨 앞자리 두 좌석을 혼자 앉는 수준의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는 정도입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사무총장이 그럴 정도이니 나머지 탑승객이야 일반 민항기 정도의 서비스도 허락되지 않는 건 당연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흔한 쥬스나 땅콩은 커녕 화물칸이 모자라다 보니 총장 보좌진과 기자단의 넘치는 짐들은 빈 좌석과 좌석 아래, 심지어 기내 화장실에까지 마구 놓이기 십상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비행때 마다 다리도 채 뻗지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비행기의 실내 높이도 끽해야 180cm나 될까 싶을 정도로 낮아 좀 키가 크다 싶은 사람들은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눕혀야 통행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 반 총장이 이따금 시간을 쪼개 기내 기자간담회를 열라치면 본인이나 기자단 모두 소음속에서 불편한 자세를 한동안 감수해야 했던 기억.
당장은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반대로 유엔 전용기가 호화판일 경우 그 역시 '이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 테지요.
상공에서의 불편은, 그러나 공항 도착과 함께 눈 녹듯 사라집니다.
각 나라마다 VIP용 통로로 드나들며 출·입국절차도 일사천리입니다.
해당국가의 보안요원은 물론 세계 곳곳에 포진해있는 유엔 직원들의 도움으로 공항도착부터 그날의 행선지까지 한 순간도 불필요한 지체 없이 바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편의가 제공됩니다.
▲ 촌음을 아끼느라 한 나라 안에서 이동할 때는 주로 헬기를 이용.
2~3시간 소요는 보통일 정도로 출입국 절차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이스라엘에서조차 심사대를 통과하는 데 불과 몇 분이면 족했습니다.
여정 종반부에는 기대치 않았던 호사도 누렸습니다.
쿠웨이트 왕실에서 전용기를 내줘 비지니스급 이상의 좌석에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 기자단에게 배정된 쿠웨이트 왕실기 좌석.
▲ 반 총장 참모들이 머문 기내 회의실. 바로 옆에는 샤워시설까지 갖춘 호화판 침실도 구비돼 쿠웨이트 왕실의 호사를 짐작케 함.
갑작스런 upgrade도 나쁘지 않았지만 유엔기와는 달리 이·착륙시 안전벨트를 매건 말건, 좌석을 뒤로 한껏 제치건 말건 스튜어디스들이 전혀 개의치 않아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쿠웨이트 왕족들도 이런 규칙이나 속박을 싫어해 스튜어디스들도 포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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