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 이삼순, 늙은 소, 전체관람가)
평균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워 보이는 늙은 소가 최 노인이 탄 손수레를 걸고 언덕길을 올라가며 힘들게 내딛는 다리를 비추는 장면마다 제 무릎이 시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충혈된 눈, 자라다 자라다 꼬부라진 뿔, 앙상한 골반과 다리, 진흙이 엉겨 붙은 털…. 그렇게 늙은 소는 30년 동안 최노인의 경운기이자 자가용, 트랙터 역할을 해왔습니다. 소가 갑자기 쓰러지자 불러온 수의사는 많이 살아야 1년이라고 말하고 고혈압에 시달리며 다리마저 불편한 최노인은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잘라 말합니다. 늙은 소의 뒤를 이을 목적으로 새로 사온 암소는 송아지를 낳고 둘은 쑥쑥 자라며 늙은 소를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는 TV 동물농장처럼 잔잔하고 포근한 동물과 인간의 교감과 우정이라고 말해버리기에는 복잡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특히 애완견을 기르시는 분들이라면 더욱 불편할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최노인의 고집이 거의 동물학대 수준이거든요. 노인도 좀 쉬고 소도 쉬게 해주다가 편하게 저 세상으로 보낼 만도한데, 노인은 1년 365일 밭을 갈고 꼴을 베고 심지어는 읍내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가는데도 늙은 소를 수송수단으로 이용합니다. 비 내리는 병원 주차장에 검은 고급승용차 옆에 떡하니 주차(?)하고 있는 소의 모습에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최노인과 소의 관계가 일방적인 착취도 아닌 것이 소에게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해 농약을 하나도 쓰지 않는 유기농을 선택하고, 손쉬운 사료를 마다하고 매일 꼴을 베다가 신선한 풀과 감자, 고구마를 같이 넣어 쇠죽까지 끓여줍니다. 최 노인과 소 사이에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할머니의 넋두리가 질릴 만도 한데 최노인은 꿈적도 하지 않고 황소보다 더 센 고집을 보여줍니다.
감독은 묵묵하게 소와 함께하는 최 노인과 할머니를 통해 땅을 지켜온 노인과 소의 끈끈하다 못해 지독하고 질기고 모진 인연을 보여주며 보는 관객들에게는 늙음과 죽음,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본능 속에서 꿈틀대는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우리 산천 풍광을 담은 촬영이 일품이고 소와 최노인의 일상과 사건, 이별까지 뚜렷한 기승전결로 담아내며 막판에는 그동안 절제되어 왔던 음악이 강하게 곁들여지며 묵직하게 가슴을 치는 힘을 가진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고상인 피프 메세나 상을 수상했고, 올 선댄스 영화제에는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았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갖췄습니다.
티쓰(감독: 미첼 리히텐슈타인, 주연: 제스 웨이슬러, 존 헨슬리, 청소년 관람불가)
아~! 섬뜩합니다. 성기에 이빨이 달린 여자라니요. 이 영화 아주 제대로 남성들의 거세공포를 건드립니다. 몇몇 민족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빨 달린 질(Vagina dentata)'에서 착안한 영화라고 하네요. 주인공 던(제스 웨이슬러)은 예쁘고 순수한 고등학생으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고 또 그 서약을 확산시키는 운동에도 앞장서는 모범 학생입니다. 하지만 집에는 어머니가 병으로 누워있고 이복 오빠는 늘 마약에 취해 있으며 던을 호시탐탐 노리기까지 하는 등 가정환경은 그리 모범적이지 않습니다. 던은 호감을 갖고 있던 남자친구와 계곡에 놀러갔다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그 남자친구가 비극적인 첫번째 희생양이 됩니다. 이후 산부인과 의사 등 여러 명이 희생자 명단에 오르는데 그 와중에 던은 자신의 감정으로 그 이빨의 작동을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설익은 사랑에 동반되는 불장난이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욕망의 분출로서의 섹스에 경종을 울린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도 담겨있고, 사건이 발생하는 장면에선 피가 난무해 잔혹 취미를 충족시켜주고, 피해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는 장면에서는 블랙 유머가 담겨 있고, 클라이맥스의 복수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만큼 표현의 수위를 극한까지 밀어붙입니다. 엔딩장면도 독특한데요. 주인공의 능력과 의도를 관객들이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잠시 뒤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 줄 모르는 피해자의 천진난만한 음탕한 표정의 아이러니도 재미있습니다. 'B급영화'스러운 정서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로 상영시간이 후다닥 지나갑니다.
(* 배우로도 활약한 바 있는 이 영화의 감독 미첼 리히텐슈타인은 우리나라에서도 모 재벌가와 연관되어 화제가 된 바 있는 그림 '행복한 눈물'의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아들이랍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그림 많이 갖고 있다면 '배고픈 영화인'은 아니겠네요. ^.^)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