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유럽은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즈프롬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그 여파는 동부유럽에 미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발칸반도, 그리고 독일까지 도달했다.
유럽은 전체 가스 수요의 4분의 1을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고, 그 중 80%가 우크라이나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그는 순간 가스 대란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2006년 1월에도 같은 경험을 했던 유럽연합(EU)은 3년 만에 또다시 에너지 없는 설움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가스 분쟁이 있을 때마다 각국 정상들은 러시아를 우회한 대체 에너지 공급로가 시급하다는 데는 동감하면서도 저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12일 사설을 통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EU는 에너지 정책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지난 9일 "유럽은 가스 분쟁의 인질이 돼서는 안되며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역내 에너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대체 에너지 개발, 비축 기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궁극적으로 에너지 공급 루트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U는 우선 각국의 참여부진으로 건설이 미뤄진 '나부코 가스관' 건설 사업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나부코 가스관 프로젝트는 지난 2006년 6월 터키를 포함한 중동부 유럽 5개국이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이란 등 카스피해에서 나는 천연가스를 터키-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총 연장 3천300km)까지 연결하기로 합의하면서 본격화됐다.
내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오는 2013년 나부코 라인이 완성되면 2020년에는 EU 가스 수요의 5% 정도가 이 수송관을 통해 유럽으로 공급돼 현재 25%에 달하는 러시아 의존도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게 된다.
나부코 가스관은 러시아의 '에너지 우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EU로서는 최선의 사업이지만 걸림돌도 없지 않다.
헝가리가 2002년 12월 가동한 러시아의 '블루 스트림(러시아~터키 구간)'에 참여 의사를 표시하면서 나부코 가스관 사업 실현이 불투명해 진 상태다.
이와 함께 이란을 거치면 핵 프로그램으로 서방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란의 협조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가스 대체 공급로는 독일과 가스프롬 주도로 진행 중인 노드스트림(1천189km)이다.
102억 달러가 소요되는 이 사업이 완성되면 발트해 해저를 통과한 연간 190억~300억 ㎥ 상당의 러시아산 가스가 독일, 영국, 네덜란드로 공급된다.
러시아산 가스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와 같은 중간 경유지를 거치지 않고 러시아와 유럽 가스공급망이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분쟁의 여지가 적고 가스 통과료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 사업의 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만나 "노드스트림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에너지 안보를 확고히 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다."라고 강조했다.
이 사업은 환경 파괴 우려와 통과 수수료를 챙기지 못하게 된 폴란드 등 일부 국가의 반대로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노드스트림 가스관 컨소시엄의 지분 51%를 보유한 가즈프롬은 2011년 10월 첫 가스관이 가동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EU는 또 정치적으로는 불안하지만,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를 대안으로 간주하고 나이지리아를 겨냥한 '트랜스 사하라' 가스관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FT는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더라도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선박 등을 이용해 수송되는 액화천연가스 터미널 건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와 함께 유럽 내에서 핵에너지 사용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분쟁으로 불가리아와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등에서는 오랫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원자력 발전소의 재가동이 검토되기도 했다.
(부다페스크.브뤼셀.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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