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견 국회 폭력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구태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 근본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랜 의회사를 지닌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과 당장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겁니다. 외세에 힘에 의해 일제 치하를 벗어나 군사독재와 권위주의를 겪어야 했던 길지 않은 우리 의회 역사에서 군사정권이나 다수당의 횡포로부터 소수 야당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 군사독재 권위주의 시대에는 의회 폭력은 오히려 다수 여당의 수단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요? 그것은 172석의 공룡 여당에 맞서는 소수 야당으로서 다수당의 무소불위의 힘을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현실적 상황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다음 얘기를 풀어가기 위함입니다.
연말국회 여야간의 극한 대치에 이어 국회사무처와 야당간의 정면충돌 과정이 여야의 휴전으로 종결되면서 여당은 국회 폭력사태에 대한 근절을 주장하며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은 원인제공자가 여당이라며 이번 폭력사태는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국회에서의 벌어진 입법전쟁의 승리는 분명 야당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여당은 과거 국회에서 보기 힘든 한 가지 치밀하게(혹자는 ‘교묘하게‘라고도 표현합니다) 느껴질 정도의 자제력을 발휘했습니다. 그것은 '직접적' 폭력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끝까지 피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18일 외통위 폭력사태나 지난 3일 로텐더 홀에서의 강제 해산 조치 때의 충돌 사태는 모두 국회 사무처와 야당 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당은 끝까지 개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명분을 축적했습니다. 국회의장이 만일 여당이 주장하는 85건의 법안을 직권상정해 준다고 했다면 여당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여야간에 충돌과 폭력사태가 일어났을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국회의장은 야당의 입장을 반영하며 8일까지 직권상정을 거부했고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당이 직접 야당과 폭력을 주고받을 일은 없게 됐습니다. 따라서 국회 폭력문제에 대한 공방에서는 아무래도 여당이 야당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 할 것입니다.
자, 저는 이와 별개로 한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소수 야당의 저항의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 18일 외통위 사태에서의 충돌, 그리고 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국회의장실에서의 행위 등은 지난달 26일 야당의 본회의장 점거사태와 분리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난달 18일 국회 외통위에서 여당 의원들은 FTA 상정을 강행하기 위해 외통위를 기습 점거했습니다. 이때 민주당 문학진 의원이 외통위 문을 해머로 내리찍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소수당인 민주당의 최대의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FTA 비준 동의안 상정을 회의장까지 걸어잠그고 기습 처리한 한나라당이 국민앞에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지 않게 만든 원인이 문학진 의원의 해머질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외통위에서 절차적 합법성을 내세운 한나라당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국회 사무처와 민주당이 대치하게 만들었습니다.그리고 강행 상정처리했습니다. 문학진 의원의 해머질만 없었다면, 전기톱만 나오지 않았더라면 민주당은 이후 여론전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장악할수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해머질과 전기톱까지 동원했어도 강행 상정은 막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해머질과 전기톱으로 인해 한나라당을 거대 여당의 수의 힘을 믿는 오만한 정당임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데도 실패했습니다.
소수 야당의 저항의 방법에는 소극적 저항과 적극적 저항이 있습니다. 회의장에서의 반대 토론, 필리버스터, 표결 강행시 집단 퇴장 등을 소극적 저항으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회의장 봉쇄, 점거 등은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적극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 역시 의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분명 불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민주당의 점거를 소수당의 저항의 방법으로 이해하는 여론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학진 의원의 해머 질은 소수당의 저항으로 이해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소수당의 저항이 아닌 폭력으로 읽혔다는 겁니다. 민주당의 최대 실수라고 제가 단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강기갑 대표가 국회의장실과 사무총장실에서 한 행위는 분명 민노당의 입장에서는 국회 사무처의 강제 해산과 이에 따른 부상사태에 대한 정당한 방어 내지 항의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그 역시 소수당의 저항 이라기 보다는 폭력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조합니다. 즉, 다수당은 국정의 책임자인 만큼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결정해야 하며 그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4년 단위로 치러지는 총선을 통해 내려질 것이라는 겁니다.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소위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다수당이 수의 힘으로 악법을 처리할 경우 그로 인한 피해와 영향은 4년 내내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태의 경우 여당이 추진하는 법들이 명백한 악법인지 아닌지 여부는 보는 이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다수당의 횡포에 대한 소수당의 견제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국회 폭력 근절책과 함께 고민돼야 할 것입니다.
자,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원인을 제공했으니 폭력은 정당하다.” 이 명제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언제든 원인을 제공할 경우 폭력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 총선때마다 여와 야가 갈릴 것이고, 소수당과 다수당이 갈릴 겁니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다수당이 횡포에 맞서 소수 야당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한국의 의회는 타이완 의회 수준을 영원히 벗어날수 없을 겁니다. 지난 16대 국회 때 정당법과 선거법을 대폭 개정함으로써 한국의 선거문화를 보다 한 차원 높였듯이, 국회 폭력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BBK 특검제 도입 문제를 놓고 여야가 극력하게 충돌했습니다. 표결처리를 막기 위해 당시 소수 야당인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했고, 당시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밖으로 끌어낸 뒤 강행 처리했습니다. 지난 2004년에는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면서도 야당일 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강행처리하기 위해 당시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이를 막으려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낸 뒤 탄핵안을 강행 처리했습니다.
여러분도 아다시피, 한나라당은 당시 엄청난 탄핵 역풍을 받고 소수당으로 전락했습니다. 다수당이라고 해서 힘을 잘못 쓸 경우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처절하게 경험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경험들이 이번 연말국회에서 한나라당이 폭력 사용을 자제하고 국회사무처와 야당 간의 몸싸움을 옆에서 보고 즐겼던 이유 중의 하나일 수 있을 겁니다. 한나라당이 지금 당당하게 국회 폭력에 대해 근절하자느니 처벌하자느니 자신있게 말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야당은 "원인을 제공하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논리로 국회폭력을 근절할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을 피해선 안됩니다. 반대로 여당은 이번 폭력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 국회 폭력 방지 대책 마련의 본질을 왜곡하려 해선 안됩니다. 지금의 여당이 앞으로 야당이 될수 있고, 지금의 야당이 앞으로 여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눈을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눈감게 할 수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따라서, 국회에서 폭력 행위를 할 경우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폭언에 대해서도 규제 장치를 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국회와 같이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는 유명무실한 국회 윤리위 대신에 엄격한 잣대로 상대 당 의원은 물론 자당 의원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처벌하는 전통이 세워져야만 국회의 폭언과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다수 여당의 날치기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주민소환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 할 얘깁니다. 폭언, 폭력 의원 뿐 아니라 국민이 원치 않는 사안을 날치기 강행처리하려는 시도도 막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야가 하도 싸워대다 보니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무관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을 날치기건 폭력이건 그릇된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가는 국회와 정치가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저항과 폭력의 경계선, 그리고 날치기와 적법한 표결처리의 경계선을 신중히 구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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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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