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투기들의 폭격으로 가자지구에 솟아오른 검은 연기를 배경으로 예의 특파원 리포트의 가장 중요한 '의무사항'인 <스탠드 업>을 마치고 빠른 손놀림으로 장비를 챙길 때였습니다. (편집자 주 ☞ 스탠드 업 : 방송기자의 리포트 가운데 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코멘트를 하는 부분을 스탠드 업이라고 합니다. 방송기자들은 흔히 '브릿지'라고도 하는데 '와빠'라는 속어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제 로켓이나 박격포가 날아올 지 모르는 곳이라는 것은 이전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습니다.)
검은 가죽점퍼 차림의 중년 사나이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일견 우리나라의 고참 강력반 형사를 연상케 하는 인상착의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TV의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잠깐 얘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얼른 위험지역을 벗어나려는 일념으로 난색을 표하려는 찰나 이스라엘 기자의 마이크가 조금 더 빨랐습니다. 카메라는 이미 돌아가는 중이었고 질문도 시작됐습니다.
'동업자'끼리 시침 뚝 떼고 외면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라 얼떨결에 답변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적과 이름, 소속사, 체류기간 등 의례적인 질문들이 끝나자 곧바로
"접경엔 왜 왔느냐? 이스라엘의 로켓 피해 지역들에는 가봤느냐?"
"기사 내에서 양측의 피해 비중은 어떻게 배분하느냐?"
"가자지구의 피해상은 실제로 목격하고 쓰는 것이냐?"
"하마스를 직접 만난 적이 있느냐?"
"객관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가만히 질문들을 들어보니 요는 외신들이 상대적 약자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만 부각할 뿐 하마스의 로켓포에 끊임없이 시달려온 이스라엘 국민들의 어려움은 소홀히 다루지 않고 있느냐는 항변과 힐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제여론이 초강대국 미국의 절대 후원 아래 완력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찍어 누르는 이스라엘 보다는 계속되는 탄압속에 신음하면서도 두 주먹으로 이스라엘의 탱크에 맞설 지언정 결코 무릎 꿇지 않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보다 동정적인 시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언론의 경우도 친미, 친이스라엘 시각 일변도에서 팔레스타인의 처지를 온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적어도 양비론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많이 늘어난 게 사실입니다.
이전에야 끊임없는 저항과 과격시위로 중동평화의 훼방꾼으로만 묘사됐던 팔레스타인이 어느 시기부터 외신의 프리즘을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시온주의에 맞서 불굴의 투지로 저항하는 민족으로 재탄생하는 변화가 이스라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기자의 이어지는 질문에서 기사 의도를 파악한 저는 가급적 제 인터뷰가 리포트에 사용되지 않도록 (마치 노회한 정치인 처럼) 민감한 질문에선 답변을 피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 기자에겐 미안한 노릇이지만, 이제 겨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에 향하시선이 균형을 맞춰가는 현실에서 그래도 아직까지 강자인 이스라엘의 언론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를 프로파겐다에 엑스트라로 동원되기는 싫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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