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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공동구매, 법을 고쳐줘도…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사시는 중학생 학부모 신동희 씨는 교복 공동구매 얘기가 나오니까 혀부터 찼습니다.

"학부모인 제가, 왜 교복업자들과 만나 교복값을 흥정하고 품질을 따지고 하는지 잘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복이 입고 싶은 학생만 입는 게 아니라면 일종의 교육 기자재인 것이고 그렇다면 교장, 교사가 값싸게 구매하는데 앞장 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신동희 씨는 지난해 11월쯤 우연히 용인시 수지 지역 중학교운영위에서 활동하는 학부모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른 학교의 교복 공동구매 얘기를 들었고 12개 학교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해 교복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로 했답니다. 중도에 그만 둔 4개 학교를 제외한 8개 학교의 학부모들은 각자 학교의 교장을 어렵게 설득해 학교내에서 교복 품평회를 열고 교복업자들과 가격과 품질 네고를 하는 등 갖가지 수고 끝에 시중에서 25만 원이 넘는 교복을 16만 원대에 납품 받기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고의 난관을 뚫고 이뤄낸 공동구매는 어이없는 이유로 무산됐습니다. 공동구매를 추진하던 학부모들은 이 8개 중학교로 진학할 학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들에게 교복 공동구매에 대한 안내장과 동의서를 졸업생들에 배포해달라고 공문을 띄워 요청했는데 모든 학교장들이 다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이권에 개입하기 싫어하는 눈치였어요." 신 씨의 말이었습니다. "교복 공동구매를 추진하면서 학교나 교육 당국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습니다. 관할 용인 교육청에 갔더니 담당자가 아예 없더군요. 그래서 공동구매 추진 메뉴얼을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서 어렵게 찾아내 추진해야 했습니다. 그런저런 어려움을 겪다보니 '내 아이가 입을 교복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하는 억울한 생각도 들더라니까요."

사실 교복은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만큼 신입생 학부모들이 교복 공동구매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재학생 학부모들이 자원봉사 하듯이 공동구매를 추진해줘야 합니다. 신 씨와 같이 순수하게 자녀의 후배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겠다는 뜻을 가진 학부모가 있어야만 가능한 사업입니다.

그런데도 학교장들은 이런 학부모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훼방만 놓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권과 관련해 괜한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학교가 교복 납품 업체를 마음대로 선정하던 시절에 이런 종류의 비리가 왕왕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아예 교복 공동구매에 교장이나 교사가 개입할 수 없도록 하고 순전히 학부모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공동구매를 추진하도록 법으로 못박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복 공동구매를 추진한 학부모들 가운데 교복업체와 특별한 이해 관계를 맺어 물의를 빚은 사례들이 생기더군요. 학교장들이 겁을 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그래서 국회는 이런저런 문제점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으로 교복 공동구매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못박는 법 개정을 지난해 3월에 했습니다. 교장과 교사, 학부모, 지역 사회 인사로 구성된 학운위에서 교복 공동구매를 주관하도록 해 교장, 교사 등 학교측이 적극적으로 교복 공동구매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학부모 등 외부 인사의 견제와 감시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국회가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법적으로 제시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현재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상태입니다. 앞서 들은 사례에서 처럼 법의 개정 취지가 전혀 일선에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지어 일선 교육청은 이 개정 법률이 '교복 공동구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복 공동구매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절차를 엄격히 한 것'이라고 곡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개정 법률에 대한 후속 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이 나오면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많은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교복 공동구매를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하도록 했으면 심의 내용은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는지,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학부모들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해 투명성을 보장할 지에 대한 시행령이나 메뉴얼을 교과부가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런 작업이 전혀 이뤄져있지 않으니 일선 교육청이나 학교는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아예 그런 개정 법률이 있는지 조차 모를 수 밖에요.

이 개정 법안을 대표 발의한 사람은 지난 17대 국회의 이경숙 의원이었습니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 의원은 이번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결과적으로 이 법안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챙길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교과부로서도 이 법안을 통해 교장, 교사에게 적극적으로 교복 공동구매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껄끄러운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접시를 닦다보면 깨지는 일이 많을 것이고 그러면 고스란히 욕은 교육 당국이 먹게 되죠. 또 일선 학교장들이 경험도 없는 이런 상업적인 업무를 극도로 꺼린다는 현장 정서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부모들이 한해 자녀들 교복값으로 쓰는 돈이 3천억 원을 넘습니다. 전술한 사례에서 보듯이 공동구매를 통해 교복값을 30%만 절약할 수 있다고 해도 학부모들은 천억 원의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국민 예산을 들여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무료 급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가 예산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학부모들에게 천억 원을 아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면 교과부가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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