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6년 8월18일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후 미국은 유엔을 무대로 한 국제외교전에서는 북한의 만행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채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등 역공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그해 9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문제가 아예 논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재외공관을 통해 각 주재국에 미국의 입장과 북한측 주장의 문제점을 적극 알리도록 하는 등 `수세적 외교'를 펼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당시 8.18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동원, 북한에 대한 응징보복을 시사하며 한반도 주변에서 무력시위를 벌여 북한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유감 성명'을 전달받는 등 외형적으론 승리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엔을 무대로 한 2라운드 외교전에선 북한의 선전공세에 밀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브렌트 스카우크로프트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976년 8월30일 백악관에서 윌리엄 스크랜톤 유엔주재 미국대사,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면담한 내용을 적은 메모 등 미 국무부가 2008년 12월31일자로 비밀분류를 해제한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메모에 따르면 북한은 8.18사건 직후인 8월20일 비동맹국가들의 지지 아래 한반도에서 외국군대의 개입과 침공을 종식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했고 이에 맞서 한국과 미국 등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다.
스카우크로프트 보좌관은 메모에서 북한 결의안에는 31개국이 지지를 표한 반면에 한국과 미국이 낸 결의안 지지서명국은 19개에 불과했다고 밝혀 양측이 제기한 결의안에 대한 세대결에서 한국과 미국측 결의안이 열세를 보이고 있음을 인정했다.
메모는 이어 "우리측에 우호적인 결의안에 대한 추가서명자를 확보하고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한국지지핵심그룹'을 형성했다'면서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최근 콜롬보 비동맹정상회의에서 광범위한 외교활동을 벌였다"며 양측의 외교전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메모는 "미군 장교 살해 및 이후 북한의 상대적인 유화노선 등 DMZ(비무장지대)에서 드러난 북한의 행동은 아마도 미군의 존재를 공격적이고,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하는 세력으로 성격 지우려는 북한의 전략을 반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메모는 "이번 유엔 총회 회기 우리의 전술적 목표는 유엔 총회 운영위원회로 하여금 모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논의를 연기토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적어 도끼만행사건에도 불구, 미국이 유엔 외교무대에서 한반도 문제 논의를 피하는 등 오히려 수세적 입장이었음을 드러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미국은 8.18 도끼만행사건을 통해 북한 정권의 야만성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외국군대의 한반도 주둔 문제점만 드러내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직면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국무부는 그해 9월6일 전 해외공관에 보낸 훈령에 따르면 국무부는 각 주재국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적극 설명할 것을 지시하고 `토킹 포인트(Talking Point)'까지 제시했다.
훈령은 "미국과, 한국의 우방들은 유엔 총회에서 무익한 충돌을 피하기를 선호하지만 일방적.친북한적 결의안의 도전에 맞설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훈령은 "친북 결의안은 한반도에 대한 경쟁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강요하기 위한 분명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한반도 미래에 대한 한국과의 협상 거부 및 남북대화 재개 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한미군은 한미양국간 안보협정에 의해 주둔하는 것으로 한반도의 위험은 유엔사 소속 미군 장교 2명이 DMZ 공동경비구역에서 살해된 최근 사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면서 "김일성의 유감 메시지 전달 등 최근 사건(8.18사건) 해결과정은 항구적인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정전체제를 유지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훈령은 강조했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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