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조만간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사들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와 전방위 유동성 공급에도 기업에 자금이 돌지 않는 현상이 계속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이어 일본 중앙은행도 CP 매입 방침을 밝힌 상태다.
한은도 "CP나 회사채 매입은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에 들어가 있으며 상황 전개에 따라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나 정책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은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인 데다 신용위험이 큰 채권을 중앙은행이 사들였을 때 해당 기업이 도산하면 그 손실은 결국 국민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간접 매입 방안 유력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이 CP를 사는 방안은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에 포함하거나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는 방법 ▲국책은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들이는 방법 등이 있다.
이는 모두 간접 지원 방식이다. 한은이 유통시장에서 CP나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한은이 부실 위험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당장 내놓기는 어려운 카드다.
간접 매입 방안 가운데 우선 RP 거래 대상에 CP를 넣는 것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 된다. 한은은 이미 은행채와 일부 특수채 등을 RP 거래 대상에 포함했다.
이 경우 한은과 RP 거래 때 은행이나 증권사가 보유한 CP를 한은에 담보로 맡겨야 한다. 다만 금융회사가 CP 보다 국채나 은행채, 통안채 등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은의 자금 지원을 받은 국책은행이 CP를 사들이는 방안이 있지만 국책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하락을 우려해 꺼릴 수 있다.
따라서 은행 자본확충펀드처럼 SPC를 설립해 한은이 여기에 돈을 낸 뒤 SPC가 채권을 사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이때 한은은 채권시장안정펀드나 자본확충펀드처럼 5조∼10조 원가량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은이 출자금 모두를 부담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 등이 또다시 출자금 일부를 분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 코가 석 자'인 은행들이 출자금을 더 부담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일부에서는 SPC가 CP를 사들이면 정부가 어느 정도 신용보강(지급보증)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의 지급보증은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CP를 직접 매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SPC 설립 등을 통한 간접 지원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SPC를 설립하기보다 이미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에 한은이 더 많은 돈을 내 CP까지 사들이 도록 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 한은 "인플레.국민부담이 고민"
한은의 CP 매입 가능성이 계속 거론되는 것은 지난 9월 중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 이후 한은이 2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려도 실물 부분에 돈이 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들이 BIS 비율 관리를 위해 기업 대출을 꺼리면서 한은이 공급한 자금의 상당 부분이 한은으로 `U턴'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91일 물 CP 금리는 10월 초 6.72%에서 지난 19일 기준 6.79%로 오히려 상승했다.
무엇보다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대출 금리를 떨어뜨리려면 이 금리들의 기준이 되는 CD 금리를 낮춰야 한다. 최근 CD 금리가 급락하고 있지만 체감금리는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CD 금리를 더 빠른 속도로 낮추려면 만기가 같은 91일짜리 CP 금리도 함께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CP 매입으로 손실이 날 경우 그 피해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는 점과 발권력을 동원해 또다시 10조 원 가량의 돈을 쏟아부으면 훗날 인플레이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중앙은행의 공신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이성태 총재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에 대한 대가는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한은이 조만간 CP를 매입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최후의 수단을 취하려면 상황이 급격히 더 악화해야 하는 등 모멘텀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최근 시중금리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내년 1월중 자본확충펀드가 출범하기 이전에 CP 등을 매입할 가능성은 낮다"며 "지금은 정책의 `소강상태'라고 보면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본확충펀드의 효과를 일단 지켜본 뒤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내놓을 수 카드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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