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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1년…악몽의 성탄절

유족 "용서할 수 없어" 사건 잊으려 예슬양 언니 개명, 사회안전망 구축 계기 및 실종전담반 운영

지난해 성탄절, 경기도 안양에 사는 이혜진(당시 10세.초등 4년).우예슬(8세.초등 2년)양이 크리스마스선물을 사 들고 귀가하다 실종된 뒤 지난 3월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어린 여아들을 유괴.살해하고 시신을 집안에서 훼손, 야산과 개천에 암매장하거나 유기한 엽기적인 범행수법의 살인마는 이웃에 사는 정성현(39)으로 밝혀져 전 국민을 경악케했다.

정성현은 2004년 군포에서 실종된 정모(당시 44세)여인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살해와 강제추행 등의 죄가 적용돼 1.2심 재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혜진.예슬양 사건을 계기로 지자체들은 방범용 CCTV 설치를 확대하고 경찰은 실종전담반을 신설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아직도 '엄마'하고 들어올 것 같아요"

"지난주 목요일(18일)이 막내딸 혜진이의 생일이었어요. 혜진이가 묻힌 청계공원묘지에 찾아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만 했어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혜진양의 어머니 이달순(43)씨는 22일 막내딸 혜진이의 기일(성탄절)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 싫다고 했다.

이씨는 "또래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1년 동안 단 한순간도 혜진이를 잊지 못했고, 지금도 '엄마'하며 혜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며 기일에 무엇을 할지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인쇄소에 다니던 혜진양의 아버지는 요즘 일을 접고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이씨가 식당일을 하며 고교생 아들과 맏딸 교육비 등 생계를 꾸려간다.

이씨는 "정성현이 살던 집을 보면 지금도 몸서리가 처져요. 절대 용서할 수 없고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인 범죄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예슬양의 부모는 지난 4월 17일 예슬양의 장례를 치른 뒤 친한 이웃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이사를 갔다.

한 달여 뒤에는 법원에 예슬양 언니(12. 중학 1년)가 개명을 신청, 이름뿐 아니라 성까지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이웃은 "예슬양 언니가 끔찍한 사건을 잊도록 예슬양 부모가 개명을 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예슬양 부모들은 사건 이후 충격으로 건강이 안 좋아지고 힘들게 생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 2의 혜진·예슬양 막자"…사회 안전망 구축

안양시는 혜진.예슬양 사건을 계기로 51억원을 들여 올해 40개 초등학교 주변과 놀이터에 폐쇄회로TV 카메라 70개를 설치했고, 내년 5월까지 115개를 추가.설치할 계획이다.

또 65세 이상 지역 노인으로 구성된 '놀이터 안전지킴이'는 매주 월-금요일 76개 어린이 놀이터와 36개 초등학교를 순찰하고 있는데 지난 4월 이후 순찰회수가 1천300회를 넘었다.

시는 이 같은 사회안전망 구축사업을 제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 7월 전국 최초로 '지역사회 안전을 위한 시민단체 참여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혜진.예슬양이 다녔던 초등학교 관계자는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도움으로 올해 범죄피해를 본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며 "하지만 혜진.예슬양을 그렇게 보내 만시지탄만 남는다"고 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760대에 불과했던 경기도 내 방범용 CCTV가 안양시 70대를 포함해 모두 855대가 추가설치돼 현재 1천615대가 운영중이다.

대당 2천만-4천만원의 고가에다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으로 지자체들이 방범용 CCTV 설치를 꺼렸지만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 방범용 CCTV 설치가 크게 늘었다.

학부모들은 지난 4월 30일 어머니폴리스인 '마미캅' 결성식을 갖고 등.하교 시간대에 통학로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도내 전 초등학교에 3만명이 넘는 마미캅이 활동중이다.

초등학교 주변의 문구점과 편의점, 음식점 등 4천800곳이 지난 4월 14일 '아동안전 지킴이 집'으로 선정돼 아동이 유괴나 성폭행 등 위급사항에 처했을 때 임시 보호하고 경찰과 신속하게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 실종전담반 설치…아동 성폭행은 여전

경찰청은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인 3월 27일부터 전국 경찰서에 아동.부녀자 실종전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경찰청의 경우 광역수사대 1개팀(6명)과 35개 경찰서 형사과 1개팀(4명)을 실종사건 수사전담팀(142명)으로 편성했다.

경찰은 그동안 실종사건 발생 시 24시간 이내에 합동심의위원회를 구성한 뒤 범죄 관련성 여부를 판단, 수사에 착수했지만 실종전담반 설치 이후 합심 없이 곧바로 수사 및 수색작업에 들어간다.

혜진.예슬양 사건 당시 가족의 요청으로 경찰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공개수사로 전환, 조기해결에 실기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전국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50)은 그러나 "실종전담반이 전문지식이 없는 강력.폭력사건 담당 형사들로 급조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나 회장은 "지난 5월 대구에서 발생한 허은정(11.초등6년)양 납치.살해사건도 엉뚱하게 주변수사만 벌이다 뒤늦게 야산에서 시신을 발견해 범인검거에 실패했다"며 "국무총리실이나 경찰청장 직속에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실종전담반이 편성돼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 13세 미만 여아 강간죄의 법정형 하한을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상향조정하는 등 관련법을 강화했지만 아동 성폭행 사건은 줄지 않고 있다.

경기경찰청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6월말까지 경기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13세 미만의 아동은 124명에 달했다.

전국 전체(529명)의 4분의 1을 차지했고, 인구가 비슷한 서울(65명)의 2배였다.

연도별 성폭력 피해 아동수도 2004년 157명, 2005년 183명, 2006년 226명, 2007년 250명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몸값을 노린 범죄 외 아동 유괴.납치사건은 대부분 성과 관련된 것"이라며 "혜진.예슬양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관련사건 수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양=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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