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는 말에 드디어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문화 '산업'. 문화도 이제 산업이 되었다. 산업으로 치면 형님격인 영화산업은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동생격인 뮤지컬 시장은 해마다 쑥-쑥 커갔다. 산업은 곧 돈이고 자본이다.
문화에 산업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엔 공연에 투자하는 회사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큰 손을 꼽으라면 단연 CJ 엔터테이먼트 회사일 것이다. CJ가 공연계에 첫발을 들인 것은 5년 전인 2003년이었다. '캣츠' '맘마미아' '지킬 앤 하이드'를 비롯해, 시장에 첫 진입한 CJ는 진공청소기처럼 될 만한 공연들은 쪽-쪽 빨아들이며 투자했다. 당시 CJ는 후발주자였다. 뮤지컬 투자업계 선두 주자는 모기업끼리도 라이벌인 오리온 그룹계열의 '제미로'라는 회사였다. 그들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제미로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을 첫 작품으로 공연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 최초로 100억이 넘는 제작비, 192억 원의 매출, 관객 24만 명 동원이라는 공연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기록들을 세우며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획을 그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2002년 '캣츠', 2003년 '그리스' '시카고' '유린타운' '킹 앤 아이' 그리고 2004년에는 지금 공연에 들어간 '미녀와 야수' 등 굵직굵직한 공연에 투자했다.
한편 CJ 엔터테인먼트는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 이름답게 지난 1995년 미국의 DreamWorks에 지분 투자하면서 먼저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CJ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 영화를 보면 '피스 메이커' '딥 임팩트' '글래디에이터' '슈렉' 등 대형 히트작들을 비롯해 국내 영화로는 '공동경비구역 JSA' '집으로' '동갑내기 과외하기'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 투자해 히트 쳤다. 그렇게 영화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오던 CJ 엔터테인먼트는 뒤늦게 뮤지컬 산업에 뛰어들었다. 첫 작품은 2003년 '캣츠'였다. 그리고 숨도 쉬지 않고 이어서 '맘마미아'로 제미로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CJ 엔터테인먼트는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캬바레' '블러드 브라더스' '렌트' 그리고 '지킬 앤 하이드' 등에 계속해서 투자했다.
단순히 뮤지컬에 투자를 한 큰 손이라는 점에서만 보면 '제미로'와 'CJ 엔터테인먼트'를 운명적 라이벌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이들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관계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제미로의 모(母) 회사는 다름 아닌 초코파이 하나로 대한민국 제과시장을 평정한 '오리온' 그룹이다. 초코파이가 나온 건 1974년, 그 역사와 전통에, 정(情)을 내세운 초코파이 CF는 여전히 인상적인 광고로 기억된다. 특히 군대 시절 일요일날 교회에 가면 초코파이를 준다고 해서 오로지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가지도 않던 교회에 갔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밖에도 '고소미' '웨하스' '치토스' '고래밥' 등 저력 있는 추억의 과자들이 오리온의 제품들이다.
제미로가 초코파이로 우뚝 선 '오리온' 그룹의 아들이라면 CJ 엔터테인먼트는 삼성그룹이 최초로 제조업 사업에 뛰어들면서 설립한 제일제당의 후손이다. 제일제당은 훗날 삼성그룹에서 분리되면서 CJ로 개명했다. CJ의 대표적인 상품은 뭐니 뭐니해도 설탕. 탤런트 김혜자씨가 명절 때면 설탕 한 포대 또는 식용유 한 병을 들고 나와서 명절 선물은 백설표라고 선전하던 옛 CF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후 CJ는 여러 식품 상품들을 내 놓았는데 '다시다' '햇반' 그리고 다른 상품으로는 '직공 모발력' '비트' 등이 있다.
제미로와 CJ 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는 각각 제과와 식품업계에서 출발해 각자의 영역에서 경쟁해 오다 1990년대 사업 다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라이벌 관계로 접어들었다. 경쟁의 불꽃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한 CJ에서부터 점화됐다. 1995년 영화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CJ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깃발을 먼저 꽂았다. 이후 CJ 엔터테인먼트는 1998년 서울 강변에 CGV를 건립하면서 멀티 플렉스 영화관 시대를 열었다.
CJ 엔터테인먼트가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진출하자 오리온 그룹은 1999년 기존에 있던 투니버스 만화 케이블 채널, OCN 등을 아우르는 미디어 자회사인 온미디어를 세우면서 뒤늦게 CJ 엔터테인먼트 추격에 나섰다. 그리고 2001년에는 멀티 플렉스 영화관인 메가 박스를 세우면서 CJ 엔터테인먼트와 어깨를 겨루게 됐다. 사업의 출발점은 달랐지만 점점 제미로와 CJ 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그리고 3차 산업의 꽃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그것은 국내 영화 산업의 시장이 포화점에 다다랐다는 전문가들의 시장 분석이 널리 퍼지면서 가시화됐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은 이번에는 오리온이 재빨랐다. 영화 산업에 한 박자 늦게 뛰어들어 선점 효과를 보지 못해 고전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오리온은 제미로를 세워 '오페라의 유령'을 시작으로 공연 사업의 첫 삽을 떴다. 이후 '캣츠' '시카고' '킹 앤 아이' '미녀와 야수' '도깨비 스톰' 각종 뮤지컬과 공연 사업에 대대적인 공세에 들어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회사가 벌이고 있는 경쟁의 대리인들은 한 뿌리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지금은 해체됐지만, 과거 삼성영상사업단의 인력들이었던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지난 1995년에 설립돼 1999년 1월까지 존재했던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공연제작사였다. 영화에서는 서울 단편 영화제가 삼성영상사업단에 의해 시작됐고 뮤지컬에서는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이 삼성영상사업단에 의해 수입됐다. 특히 삼성영상사업단은 기존의 영화와 뮤지컬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경영의 투명화와 전문화, 분업화를 도입해 공연을 그야말로 산업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초석이 됐다. 또한 외국 스태프들과 국내 제작진이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선진 노하우를 흡수했다. 그러나 삼성영상사업단은 하루아침에 해체됐다. 내부의 불법 비자금 조성사실이 드러난 게 결정적이었다는 뒷얘기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아무래도 시기상조였다는 게 더 적절한 이유일 것 같다.
아무튼 해체된 삼성영상사업단의 인력들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들고 CJ 엔터테인먼트와 제미로 등 공연단체로 또 충무로 등의 영화 제작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삼성그룹 계열의 CJ 엔터테인먼트는 삼성영상사업단의 노하우와 인력을 바탕으로 영화쪽에서 선점 효과를 보며 톡톡히 재미를 봐 왔다. 그러나 공연 사업에는 제미로에 선수를 빼앗겼다. 2003년 CJ 엔터테인먼트는 과거 삼성영상사업단의 공연쪽 인력을 끌어들여와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2003년 '캣츠', 2004년 '맘마미아' '카바레' '지킬 앤 하이드' '렌트' '블러드 브라더스' 등 후발 주자로서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제미로와 CJ 엔터테이먼트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져 갔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미녀와 야수'를 제미로가 투자하자 CJ 엔터테인먼트는 또 다른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에 투자했다. 오리온 대 제일제당(CJ), 제미로 대 CJ 엔터테인먼트. 제과 대 식품, 영화 대 영화, 공연 대 공연....................... 라이벌의 경쟁은 그렇게 쭉 될 줄 알았는데, 2005년 돌연 오리온은 공연산업에서 손을 뗐다. 하루 아침에 제미로라는 회사는 정리됐고 직원들은 또 다시 공연계 이곳 저곳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라이벌의 게임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CJ만 남았다. 대기업 자본으로서는 유일하게. CJ는 말 그대로 큰 손이 됐다.
그 즈음해서 창작 뮤지컬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커져갔다. 당연했다. 돈을 벌면 벌수록 '로얄티'라는 명목으로 외국 원작회사에게 주는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캣츠'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한 장을 팔아도, '맘마미아' 로고가 찍힌 머그 컵 하나를 팔아도, '오페라 유령' 가면이 새겨진 열쇠 고리를 하나 팔아도, 판매금액의 일부를 영국에 송금해야한다. 우리 것이 필요했다. 필요는 창조를 낳는 법.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졸업한 재능 있는 젊은 피가 한국 뮤지컬계에 수혈됐다. 장유정, 김혜성, 추민주. 지금은 잘 나가는 극작가, 작곡가로서 '흥행 보증수표'라는 등의 수식어가 붙지만 그때는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한예종을 다니며 친구끼리 썼던 대본, 졸업 작품으로 올렸던 뮤지컬 작품이었던 '김종욱 찾기' '빨래' 등등의 작품들이 젊은 뮤지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때 '방화' - 지금은 모두 한국 영화라고 하지만 - 는 영화 관객들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헐리우드 영화보다 한 수 아래, 방화는 왠지 어슬프다는 등등의 그런 편견. 그러다 어느 순간 - 대표적인 분기점으로 영화 '쉬리'를 꼽는다 - 영화 관객들은 '방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 영화'라는 단어를 사용 했고, 한국 영화는 왠지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버렸다.
뮤지컬에서도 그랬다. 뮤지컬 '맘마미아' 이후 나오기 시작한 창작 뮤지컬들은 이전의 창작 뮤지컬들과는 확실하게 뮤지컬의 형식적 완성미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공연계 큰 손인 CJ는 젊은 창작자들이 만든 뮤지컬을 길러내는 작업을 하며 선점해 갔다. 지금도 대학로 소극자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오 당신' '김종욱 찾기' 같은 작품들이 바로 CJ가 일찌감치 찜해서 투자한 작품들이다. 그러면서 소극장용 창작 뮤지컬들이 쏟아졌다. 대극장에 창작 뮤지컬을 올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실패의 위험이 컸기 때문에 소극장용 뮤지컬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극장이 부족했다. 뮤지컬 투자사와 제작사들은 대학로로 눈을 돌렸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공연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뮤지컬 제작사 외에 연극을 하던 극단들도 하나 둘씩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배우들도 이제 뮤지컬을 한다하면 속으로 곱지 않게 보던 시선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 대학로에 뮤지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맘마미아'의 신시뮤지컬컴퍼니는 대학로에 극장을 마련했다. '틱틱붐' '더 씽 어바웃 맨' '뱃보이' '블러드 브라더스' 등 '뮤지컬 즐겨찾기'라는 타이틀로 대학로 극장에서 뮤지컬 공연에 들어갔다. '난타' 공연으로 유명한 PMC 프로덕션도 대학로에 3백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극장을 개관했다.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는 뮤지컬 '헤드윅'이 소극장 뮤지컬로서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대학로하면 연극을 떠올리던 시절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로에 연극 대신 뮤지컬을 보러 가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갔다.
뮤지컬의 몸집은 갈수록 커졌다. 2005년 이후 뉴욕과 런던에서 공연하는 뮤지컬과 서울에서 공연하는 시차는 눈에 띄게 줄어갔다. 뉴욕에서 하는 공연이 얼마 있으며 바로 서울로 들어왔다. 뮤지컬 제작사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고 제작자들 스스로 '더 이상 들여올 작품이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뮤지컬들이 넘쳐났다. '미녀와 야수'에 이어 '아이다' '라이온 킹' 등 디즈니의 작품들도 다 들어왔고,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웬만한 뉴욕 뮤지컬의 고전 등이 차례로 다 들어왔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해 '캣츠' '에비타' 등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사인 영국 RUG사의 작품들, 그리고 역시 영국의 뮤지컬 회사인 매킨토시의 '미스 사이공' 등 대형 뮤지컬들이 거의 다 들어왔다.
"영화는 다운사이징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뮤지컬은 업사이징으로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올 상반기 개봉작 가운데 '그 놈 목소리' 외에는 전국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이 없었던 한국 영화계가 불황탈피를 위해 제작비를 대폭 줄이는 군살 빼기로 돌파구를 마련중이다. 반면 뮤지컬계는 호황을 맞아 영화에 버금가는 유례없는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서울경제 2007년, 7월26일자>
한국 영화시장이 포화됐다는 흉흉한 말들이 충무로 안팎으로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영화판을 휩쓸고 다니던 돈들이 이제는 충무로를 떠나 뮤지컬로 몰려올 것이라는 풍문이 바람결에 돌아다녔다. 문화 산업이라는 말은 이제 영화보다도 뮤지컬로 그 초점을 옮겨가는 듯 보였다.
연극보다 뮤지컬을 하는 소극장들이 더 많은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뮤지컬 산업은 점점 영화 산업의 발전 과정을 닮아가고 있었다. 점점 그리고 아주 빨리. 요즘 뮤지컬계에서는 뮤지컬 시장이 포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한 게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발전은 사실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도입되면서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계는 사정이 다르다. 영화처럼 회전율도 높지 않을 뿐 아니라 극장이라는 것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뮤지컬 제작사의 대표들이 가장 큰 능력을 발휘해야하는 문제는 바로 대관능력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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