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야 하는데…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라 그런지 공허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네요."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 씨의 간첩 행위를 도운 혐의로 21년을 복역하고 40년 만에 무죄를 판결받은 이 씨의 처조카 배경옥(70) 씨는 19일 선고가 끝난 뒤 눈물을 글썽이며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재판부는 그에게 씌워진 간첩 행위가 모두 무죄라는 점을 판시한 뒤 "이제 법정 밖으로 나가고 세상 속으로 나가도 좋다"고 기운을 북돋워 주기까지 했지만 수십년간 국가 권력의 횡포에 시달리던 배씨와 가족의 삶은 이미 '폐허'가 돼 버렸다.
1969년 1월 월남에서 체포돼 압송된 그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고 무수히 구타당해 갈비뼈가 으스러졌으며 가족과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당한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강요된 자백을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팔이 빠져 수술을 하기도 하고 온몸에 성한 곳이라곤 남아 있지 않다시피한 그는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말로 그간의 아픔을 대신 표현했다.
1989년 12월22일 출소하니 네다섯 살 때 헤어진 아들은 건축을 전공해 1급 설계사의 꿈을 이뤘지만 그가 자리를 비운 20여년간 공안당국은 가족에게 끊임없는 감시의 손을 뻗쳐왔었고 아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가 출소한 다음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에 잇따르는 재심사건 무죄 판결과 관련해 배 씨는 "억울한 사람이 많다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정과 주위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공권력 남용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배 씨는 이씨의 이중간첩 사건이 조작됐다고 보도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조갑제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이제 아들의 억울한 옥살이가 가슴에 맺힌 고령의 어머니(95)와 아내, 딸과 함께 편안한 삶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이제 나이가 일흔이니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시간을 두고 뭘 할지 생각해 보겠다. 다만 무죄 판결이 난 만큼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형사 보상 청구가 가능한지 변호인과 상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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