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학년도 대학입학수능시험 발표 하루 전인 지난 9일 오후, 사설 입시정보업체 비상에듀에서 교육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이번 수능의 표준편차, 도수분포표 등 수능성적을 통계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수능성적 발표날까지는 대외 비공개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내부자료였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미리 알려줬다고 기뻐했을까요?
'어떻게 입수했을까?'
자료 최초 작성처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벌떼 같은 취재가 시작됐고, 발끈한 평가원은 유출 경위를 밝혀달라며 서울 종로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교육부가 아닌 사회부 출입기자에게 취재가 배당된 이유였죠.
그런데 비상에듀가 사전유출했던 이른바 수능성적 분석자료는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년 수능 주관처인 평가원에서는 수능성적 발표를 앞두고 성적 분포를 알아보기 위해 통계분석을 실시하고, 수능발표 하루 전날 각급학교와 교육청에 배포합니다.
물론 성적 발표날인 다음날까지는 밀봉돼 공개되면 안되죠.
기자실에도 성적발표날부터 보도할 것을 전재로 똑같은 자료가 배포됩니다.
결국, 사설 입시정보업체나 학원이 이 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루트가 꽤나 많은 셈이죠.
이 때문에 제가 출입하는 종로서 기자실에서도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기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경찰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경찰) "평가원 직원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수능시험을 주관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의 데이터가 해킹됐다?'
별 것 아닐 것 같은 사건이 이른바 '얘기가 되는' 사건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입니다.
취재경쟁이 시작됐고, 아침 내내 강남 주변 사설 교육컨설팅 업체를 뒤져 '해킹'의 장본인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강남 G 교육컨설팅 업체 입시정보부장이라는 김 모 씨.
"제가 해킹했어요. 죄송합니다. 평가원 직원의 이메일 비밀번호와 아이디를 알아내 이메일을 빼냈습니다."
그런데 대학시절 전공이 교육학이라는 김 씨는 언뜻 대화를 나누어봐도, 해킹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은 없어보였습니다.
'만약 김 씨가 해킹한 게 아니라면?'
아니라면 평가원 직원이 미리 김 씨와 짜고 정보를 유출했다는 결론이 나오죠.
아직 수사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낮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든 김 씨가 빼낸 정보는 강남의 또다른 교육컨설팅 업체인 K사 직원을 통해 비상 에듀의 진 모 이사 수중에 넘어갔고, 비상에듀는 진 이사가 확보한 정보를 '발빠른 정보수집력'을 과시하려 했던지 기자들에게 뿌리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들 교육컨설팅 업체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면서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는데요, 취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런 해프닝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2년 전, 강남 학원가에서도 유명한 C학원이 일선 교사를 통해 수능 전날 배포한 성적 분석자료를 빼낸 사건이 있었고, 학원 관계자와 교사는 모두 사법처리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학원이나 사설 교육컨설팅 업체들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정보확보에 열을 올릴까?
그만큼 수요가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들 업체들은 대학 입시와 관련된 정보를 한 건에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받고 학부모에게 팝니다.
돈만 버는게 아니고, 자신들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서까지 서로 정보경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정말 수능이 뭐길래......씁쓸한 한국의 교육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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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건.사고현장을 누비며 꼼꼼하고 매운 맛의 기사를 전해주는 김형주 기자는 2004년 공채로 입사해 주로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해왔습니다. 훤칠한 키에 핸섬한 외모의 김 기자는 취재현장에서 만난 인간 군상들과 사회 부조리 등 젋은 기자가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담은 개인 블로그도 운영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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