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10= 90 or 100?
그런데 이 수학 문제는 여기서 마법을 부립니다. 이 학생은 기존에 80의 힘을 들이던 공부를 한 과목이 줄면서 오히려 90이나 100의 힘을 들이게 됩니다. 왜 그러냐구요? 현실에서 따져봅시다.
교과부가 2012학년도, 즉 현재 중 2학년생들이 보게 될 수능 시험부터 탐구영역에서 현재 최대 4과목까지 응시할 수 있던 것을 3과목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입니다. 야호! 그렇다면 이제 학생들은 1과목 준비하던 그 시간을 예체능 활동을 통해 감성을 풍성히 키우는데 쓰거나 각종 취미활동을 함으로써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겠군요. 하지만 현실속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줄어든 1과목에 쓰던 시간을 나머지 과목 공부에 온전히 쏟아부을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들은 어려워하고 재미없어 하는 국, 영, 수 성적을 올리는데 더욱 매달리겠죠. 그럼 학생들은 더 힘이 들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한 희안한 수학 문제가 이렇게 성립하는군요.
즉, 교육 당국이 거두려는 정책 목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만큼 이번 수능 체제 개편은 도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에 각종 부작용이 덧붙는다는 점입니다.
우선 사교육비. 주위에 아는 수험생이나 중, 고등학교 학생에게 물어보세요. 국, 영, 수와 사회·과학탐구 가운데 어느 과목에 더 많은 사교육비를 쓰는 지, 어느 쪽 사교육비가 더 비싼 지를요. 국, 영, 수 과목에 더 치중하도록 할 수록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납니다. 적어도 줄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 학부모들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교육비를 쓸 뿐입니다. 그럼 이렇게 줄어든 과목에 집중적으로 쓰는 사교육비가 더 효율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교육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돼 처음 지출하는 1만 원으로 올릴 수 있는 성적보다 마지막 쓰는 1만 원으로 끌어올리는 성적은 훨씬 작아집니다.
쉽게 말해 50점 맞는 학생을 사교육을 시켜 80점까지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90점 맞는 학생에게 더 많은 사교육을 시켜 100점으로 만들기가 훨씬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성적이라는 차원을 떠나서 약간 더 까다로운 문제를 맞추기 위해 들이는 사교육이 바람직합니까, 온전히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익히기 위한 사교육이 바람직한가요. 대답이 뻔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이번 수능 체제 개편은 아예 속칭 대못을 박았습니다. 수리 영역의 출제범위는 오히려 늘렸습니다. 그동안 인문계 학생들이 보는 수리 나형에는 미적분에 대한 문제가 나오지 않았는데 2012학년도 수능부터는 다시 출제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미적분 풀이 능력이 있어야 하는 지를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나 자연탐구 영역은 응시 과목수를 줄여 비중을 낮추면서 수학은 출제범위를 넓혀 비중을 올린다면 가뜩이나 국, 영, 수 과목 공부에 편중된 우리 교육의 편식성을 더 키울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국, 영, 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학문간 균형에 대한 지적입니다.
◎ 실익없는 수능개편, 도대체 왜?
이번 정책을 담당한 교과부의 간부도 털어놓더군요. "사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수능에서 1과목을 줄여주면 그 시간을 예체능에 투자하면 좋을텐데…솔직히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럼 왜 교과부가 별 실익도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잔뜩 따라오는 수능 체제 개편을 강행할까요?
대통령 공약이기 때문입니다. 올초 대통령직 인수위는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까지 탐구영역에 합쳐서 최대 2과목만 선택하자는 안을 내놨습니다. 이 경우 총 5과목까지만 응시할 수 있어 현재보다 무려 3과목이나 줄어드는 획기적인 안입니다. 하지만 교과부가 앞서 설명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변화폭을 최소화한 것이 이번에 내놓은 시안입니다. 속마음은 아예 수능에 손대지 않고 싶었지만 정권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죠.
교과부든, 청와대든 제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수능 체제를 더 좋게 고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으니 제발 그냥 가만히 놔둬주세요. 매번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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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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