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으로의 변신은 쉽지 않았다.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지만 한나라당에게 올 한해는 '172석의 힘'이 주는 영광보다는 역설적으로 '172석의 무기력'을 절감한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였다.
당내 계파간 갈등, 구심점 상실, 당.정.청 불협화음에 따른 정책 엇박자 등 내부 요인과 쇠고기 파동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요인이 맞물리며 안팎의 도전은 거셌다. 반면 대응은 무기력했다.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와, 무기력한 여당의 대응에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는 내부의 강한 비판도 터져나왔다.
지난해 대선 승리로 정권을 탈환한 한나라당은 여세를 몰아 4.9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고, 친박 인사 복당으로 몸집은 안정 과반인 172석으로 불었다.
특히 영남당이라는 지역 정당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수도권 정당으로 자림매김한 것은 큰 성과로 꼽혔다.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 84명에 달하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자축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화합과 통합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본선보다 더 치열했던 지난해 대선 경선 후유증이 출발점이었다.
대선에서 승리하며 정권은 되찾았지만, 후유증은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 진영간 봉합된 갈등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폭발했다.
총선 직전 나온 박근혜 전 대표의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한 마디는 여권을 뒤흔들었고, 총선 국면을 바꿔 놓았다.
7월 친박 인사 복당으로 양측간 갈등은 형식적으로 봉합됐지만, 완전 해소되기는 요원하다. 한 초선 의원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느냐"면서 "엄연히 친이와 친박이라는 계파가 존재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여권 주류의 구심점 찾기도 한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정두언 의원의 '당.청 4인방 폐혜' 언급으로 지난 6월 촉발된 권력 핵심부 내 갈등은 친이 진영의 원심력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문제를 제기했던 정두언 의원은 몸을 한껏 낮췄고,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도 '만사형통'이라는 오해의 시선을 더욱 의식해야 했다.
정권 창출의 다른 1등 공신인 이재오 전 의원은 총선 패배 후 미국행을 택한 뒤 아직 귀국행 티켓을 끊지 못하고 있다.
친이 진영에 원심력이 가해진 반면 상대적으로 친박 진영은 구심력이 강해졌다. '월박(원래 친박)', '주이야박(낮에는 친이, 밤에는 친박)', '복박(친이로 갔던 친박의 복귀)' 등 신조어도 생겨났다.
결국 172석이라는 절대 안정 과반의석을 확보하고도 그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비만'에 따른 합병증만 떠안은 셈이 됐다.
종합부동산세, 수도권 규제완화 등에서 불거진 정책 불협화음, 꽉 막힌 당내 의사 소통, 쇠고기 파동과 경제 위기에서 보여준 대안 제시 및 위기관리 능력 부재, 청와대 눈치보기 등은 구체적인 부산물이다.
한 재선 의원은 "그동안 집권 여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출만한 여유가 없었다"며 "하지만 2012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도 당이 변해야 하며, 계파 싸움을 초월한 보수 대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이.친박측간 화학적 융합이 첫번째 과제로 꼽힌다. '박근혜 역할론'을 필두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목표로 한 친이계와 외연 확대를 모색해야 하는 친박계의 공통분모 찾기가 활성화될지 주목된다.
친이 직계 의원들의 움직임도 관심이다. 이들 사이에는 '이대로는 더이상 안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 초선 의원은 "정말 필요하다면 배지를 떼고라도 이명박 정부를 위해 일할 생각"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연말 여야간 이념 논쟁이 불붙을 쟁점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그동안과 다른 어떤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느냐가 첫 평가가 될 전망이다.
그 평가의 기준은 '이명박 개혁입법'의 처리 건수가 아니라, 법안 형성.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만의 가치, 친이.친박 공통의 가치를 어떻게 만들고 담아내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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