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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정치[ ①격동의 정치권

무자년(戊子年) 2008년 정치권은 거센 폭풍우 속에서 항로를 벗어난 난파선처럼 표류했다.

탈(脫)이념적인 '실용과 변화'를 화두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이란 국민적 여망을 안고 출범했지만 예기치 못한 쇠고기 파동과 세계적 경제위기의 격랑 속에 휘청거렸다.

대선에 이어 곧바로 치러진 총선에서 민의는 새로운 정치와 경제부흥이란 열망을 표출했지만 미증유의 경제난에 또 다시 응전해야 하는 역사적 숙명과 마주서야 했다.

특히 10년만의 정권교체는 진보에서 보수로의 '권력이동'이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안정 속에 지속적인 발전'에 두고자 했던 국민적 선택이었으나 미처 이를 깨닫지 못한 정치권은 통합보다는 분열을 노정했다.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의 화두는 '경제 살리기'였다. 국민의 이목은 대통령직 인수위 활동에 쏠렸다. 새로운 정권의 국정 청사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좌표와 항로를 짜는 작업을 마무리했으나 '아린지'로 통칭되는 영어 공교육 논란 등 잦은 '헛발질'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총선을 향한 정치권의 발걸음도 분주했다. 하지만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정치환경 속에서 정치권은 미처 내부 체제정비도 못한 채 자기분열을 가속화했다.

공천 갈등은 내부분열의 '도화선'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 작업은 '대학살'이라고 할만큼 파격적이었다. 공천 내홍은 '탈당 도미노'로 이어졌고, 총선 정국은 혼돈 속에 빠졌다.

특히 한나라당은 경선 과정에서부터 잉태된 친이-친박간 불화와 반목이 공천을 통해 정점으로 치달았다. 이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의 등장으로 발현됐다.

친이계 내부에서도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겨냥, 소장파 55명의 '용퇴론'이 나오면서 정권창출의 주역들간 권력암투가 빚어지기도 했다.

민주당에서도 손학규 대표 체제가 구축되자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을 시작으로 낙천한 현역 의원들의 이탈이 잇따랐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분화도 나타났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자유선진당으로 독립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이념갈등 속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진보에서 보수로의 권력이동이란 의미를 뛰어넘어 경제부흥이란 국민적 여망을 안은 채 출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첫 과제였던 '작은 정부'를 위한 정부조직개편은 여야 대립으로 법적 임기를 시작하고도 내각 구성조차 못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낳았다.

게다가 '강부자.고소영 내각'이란 비판 속에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취임 전날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자진사퇴하면서 첫 시련을 겪어야 했다.

또 인수.인계과정에서 시작된 노무현 정부와의 갈등은 대통령 기록물과 청와대 운영서버인 '이지원(e-知園) 반환 문제로 비화됐고 쇠고기 협상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를 놓고서는 '책임 공방'으로 격화했다.

4월 총선에서 민의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했다. 한나라당에게는 과반인 153석을 안겼지만 '독주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민주당에게는 81석을 줬지만 '견제야당'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표급 중진들이 줄줄이 낙선하고 초선들이 대거 입성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정치권의 물갈이도 이뤄졌다.

한나라당에서는 총선 후 친박 의원들의 일괄 복당으로 계파갈등이 소강상태를 접어들었고 박희태 대표-홍준표 원내대표가 '신주류'로 떠올랐다.

민주당도 정세균 대표-원혜영 원내대표 체제로 개편됐고,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충청지역을 발판으로 정치적 지분을 회복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은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 논란에 휘청거렸다. 쇠고기 안전성과 검역주권 공방은 국민에게 정치불신을 심화시켰고 촛불시위는 우리 사회를 극한 이념.노선대립 속에 몰아넣었다.

그 결과 '6.4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고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반토막인 20% 안팎으로 추락, '여권 위기설'이 나왔다. 이어 쇠고기 고시 강행으로 제18대 국회는 임기 개시 후 82일이나 '개점휴업' 상태로 공전했다.

촛불시위가 격화되고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정조사가 본격화하자 이 대통령은 6월19일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고, 대표공약인 대운하 추진도 전면 보류했다.

또 청와대 비서진 개편에 이어 장관 3명도 경질했다. 하지만 '고물가 책임론'에 휩싸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유임시킴으로써 인적 쇄신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7월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랭한 가운데 정치권은 이념대립의 장(場)으로 변모했다. 곧이어 터진 일본의 독도 영유권 표기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도 뜨거웠다.

우여곡절 끝에 8월26일 제18대 원구성이 완료됐지만 한미FTA 비준과 수도권 규제완화, 추경예산안 처리 문제 등이 여름 정국의 쟁점으로 부각됐다.

9월초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 쓰나미'는 유동성 악화와 실물경제 위축을 초래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할 정치권은 '네탓 공방' 속에 9월17일에야 추경예산안 4조5천685억원을 처리했다.

첫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쌀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가 불거져 국정조사가 실시됐지만 전.현직 정권의 책임 공방과 수령자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파행을 거듭했다.

예산안 심사는 상임위 소위 구성을 놓고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처음부터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국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심의가 늦어져 법정 처리시한(12월2일)을 넘기는 '위헌'을 답습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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