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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프라미스 - 12월 둘째주 개봉영화

 이번 주에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대거 개봉됩니다. 미국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다는 [트와일라잇], 니콜 키드먼 주연의 ‘대서사 로맨스’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벤 스틸러가 톰 크루즈까지 망가뜨리며 찍은 웃음 핵폭탄 코미디라는 [트로픽 썬더] 등이 있는데 다 고만고만해 보이고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이스턴 프라미스]를 가장 먼저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스턴 프라미스(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주연: 비고 모르텐슨, 나오미 왓츠, 18세 관람가)

사람이 파리로 변하는 기괴한 SF영화인 1986년 작 [플라이]로부터 시작해 남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 영역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과 맥을 같이하는 [폭력의 역사]를 보고 났을 때도 무언가 어둡고 칙칙한 인간의 비밀을 엿본 것 같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스턴 프라미스]도 그런 분위기를 짙게 풍깁니다. 그 께름칙함은 피하고 싶은 특성보다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기묘한 힘이 있습니다. [폭력의 역사]와 다른 점은 결말에서 그나마 희망의 단초를 살짝 남겨놓는다는 점입니다.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런 살인으로 시작해 니콜라이(비고 모르텐슨)가 문신이 가득한 알몸으로 사우나 욕장에서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칼에 베이고 찔리며 벌이는 격투씬은 소름이 돋을 정도인데요. 이성과 합리로 한 치의 오차 없이 판단하고 행동하고 세상이 돌아간다는 낙관적인 세계관에 한방 세게 먹입니다. 코엔 형제도 비슷한 세계관을 투영하는데 그보다는 훨씬 무겁고 어둡습니다. 

나오미 왓츠로 대표되는 선의 세계와 레스토랑 사장으로 대표되는 악의 세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방식은 런던의 추적거리는 날씨와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트와일라잇(감독: 케서린 하드윅, 주연: 로버트 패틴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12세 관람가)

미국에서 대박이 터졌다고 하더군요. 3,700만 달러의 제작비는 개봉 사흘 만에 회수했고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10대 여성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열성팬들의 광적인 신드롬 내지는 팬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딱 우리 취향이야" 하며 열렬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거죠.

휙휙 날아다니고 마룻장이 쫘악 밀려나가는 격투 장면이 등장하는 예고편이 훌륭해보여 꽤 관심이 갔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딘지 모르게 '낚였다'는 기분까지 들더군요. 소녀 취향 로맨스이지 제 취향 액션이 아니더군요. 예고편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액션장면은 전체 두 시간 가운데 한 시간 반 정도나 지나서 나옵니다. 벨라를 업고 날아다니고 뱀파이어 가족들의 초능력 야구놀이와 영화의 하일라이트인 무용연습실 액션 정도입니다. 야구하는 장면에서 투수를 맡은 여자 뱀파이어의 하이킥 시구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역대 뱀파이어 영화의 핵심코드는 위험한 성적인 관능미였죠. 창백한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묘한 매력을 사냥감인 상대방 희생자는 거부하지 못하고 매혹에 넘어가 결국 피를 빨린다는 설정이 많죠. 이 영화는 그런 매력의 촛점을 마치 돋보기로 햇빛을 한 점에 모으듯이 10대 소녀들에게 집중했습니다. 

뱀파이어 액션물로 착각하고 극장을 찾으시는 남자 관객들이 적잖이 당황할 정도로 이 영화는 철저한 하이틴 로맨스로 뱀파이어라는 요소를 접합시킨 영화입니다. 10대 소녀들이 좋아하는 치즈케이크처럼 달콤한 맛이죠. 이런 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로맨스가 계속되는 영화 중반까지 많이 거북할 것 같네요. 요즘 뜨는 '안상태 기자' 버전으로 하자면 이런 식이겠지요.

"난~ 학교 킹카인 그의 이글거리는 눈길이 싫지 않았을 뿐이고,
그 눈길은 내 피를 간절히 원하는 눈빛이었을 뿐이고,
그래도 피를 빨지 않는 놀라운 인내심이 사랑 때문이라니 멋있어 보였을 뿐이고,
날 등에 업고 타잔처럼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니 더 마음이 끌릴 뿐이고,
내피를 노리는 나쁜 뱀파이어의 공격을 목숨 걸고 막아주니 환장할 정도로 멋있을 뿐이고,
난~ 엄마 아빠도 사랑하지만 뱀파이어를 더 사랑할 뿐이고.
그래서 나도 뱀파이어가 돼 영원히 그이와 함께 하고 싶을 뿐이고."

(* 저는 10대들의 로맨스 보다는 데이트 나가는 딸에게 후추 스프레이 챙겨주며 불안해하는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벨라 아버지의 노심초사에 더 공감이 가더군요.^.^;) 

트로픽 썬더(감독: 벤 스틸러, 주연: 벤 스틸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잭 블랙)

인기 액션스타였지만 지금은 전성기를 지나 연기력 콤플렉스가 있는 터그(벤 스틸러), 터그가 부러워할만한 연기력을 갖고 있는 연기파 배우로 이번 영화를 위해 흑인으로 변신하는 수술까지 받은 커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방귀를 잘 뀌는 악동배우이자 마약중독 증세를 지닌 제프(잭 블랙)등이 함께 모여 엄청난 스케일의 베트남 전쟁영화를 찍는데 감독은 배우들의 신경전 앞에 속수무책, 영화촬영은 제대로 굴러가질 않습니다. 10%도 촬영하지 않았는데 제작비를 거의 다 써버린 심약한 영국 출신 감독은 제작자 레스에게 심하게 질책을 당한 뒤, 꾀를 냅니다. 

마치 리얼리티 쇼처럼 배우들을 밀림 한 가운데 몰아넣고 곳곳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로 찍겠다는 계획인데 거기서 무장한 마약 밀매조직을 마주치는 거죠. 영화라고 믿고 있는 배우들은 이들을 베트콩을 연기하는 배우들이라 생각하고 맞붙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이크 마이어스 영화처럼 화장실 유머를 포함한 미국식 농담이 강해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웃기는커녕 불편해할 사람들도 많을 것 같더군요. 흑인 분장을 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흑인인척 하는 연기가 놀랍고 대머리에 뚱보 변장을 하고 저질 춤을 추어대는 톰 크루즈는 더 놀랍습니다. 후반에 가서야 "혹시 톰 크루즈 아닐까?" 할 정도였습니다. 막강 배우들이 총 출동해 영화에 관한 가벼운 농담을 주제로 마치 파티를 즐기듯이 흥겹게 촬영한 영화입니다.

이제는 할리우드에서도 잘 만들지 않는 '로맨스 대작'이라는 대서사 로맨스 드라마라고 엄청난 광고를 쏟아대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예매율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저는 못 봤는데 보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 등 호주 출신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출동해 호주의 자존심을 걸고 야심찬 대작에 도전했지만 그 야심을 제대로 실현하진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2시간 44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알차게 채우지 못했다는 평이오니 이리저리 잘 살펴보시고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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