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위 소위 회의장 앞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육박전도 벌어졌고, 한술 더 떠서 "선진당은 한나라당의 2중대"라는 민주당측 발언을 놓고 발언 당사자인 민주당과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선진당간에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진당 당원들이 여야 원내대표 협상장에서 강하게 항의한 것도 두 당 간의 신경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회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는 이유를 이해할 만 합니다.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유권자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고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호소력 있는 정책대결을 펼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정당의 책무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부 여당으로서는 경제난 해소를 위해 어떻게든 예산안을 원안대로 빨리 처리하고 싶을 겁니다. 각종 감세정책과 정부 재정지출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고 경기를 활성화하고 싶을 겁니다. 내년 초에 예산이 적기에 투입돼 경기가 살아나야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반면에 야당 특히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감세정책과 정부 재정지출로 인해 국가 재정위기가 가중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동시에 정부의 감세정책이 부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공격함으로써 서민들을 정부여당과 괴리시키고 자신들의 표로 흡수하려 할 겁니다.
정부여당이 예산안을 '원안대로', 그리고 '조속히' 처리하고자 하고, 반면 민주당은 '부자감세 주장을 통한 표 흡수' 효과를 극대화하려 합니다. 예산안 조기처리에 따른 경기부양보다는 경제체질이 악화되는 것을 막겠다는게 민주당의 기본 생각일 겁니다. 이것이 예산안 처리와 관련된 여야의 기본 전략일 겁니다.
이제 전술적 측면을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최근 정기국회 회기 내인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국회법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몇일에 걸쳐 야당을 압박하면서 명분을 축적했고, 엊그제 감세법안 강행처리를 한번 위협하면서도 일단 참았던 것도 종국적으로는 대야 압박과 강행처리를 위한 수순 쌓기로 비춰집니다.
"법에 따라 9일까지 처리한다"는 것은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좋은데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도 국민의 지지를 얻을 충분한 명분이 됩니다. 여당은 또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를 민주당을 배제한 채 강행하면서 야당을 압박했습니다. 즉, "여차하면 선진당과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임과 동시에 "심사시간이 모자라니 9일 이후에 처리하자"는 민주당의 반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도 읽힙니다.
반면, 민주당은 "부자감세를 용인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9일 처리에 반대해 왔습니다. 일단 전술적으로 정부여당이 부자 옹호정당임을 내세워 서민의 지지를 구함으로써 예산안 처리 연기의 명분을 쌓아보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예산안 처리는 해줘야 한다"는 온건론(?)도 있었지만 민주당내에 강경파들, 그리고 민노당과의 최소한의 공동 전선 구축을 위해서는 여당과 일정정도 대립각을 세워야 할 필요성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이러한 전술적 측면을 잘못 고려함으로써 불리한 싸움을 이끌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금 국민은 부자이고 빈자이고 간에 무슨 수를 내서라도 경제를 살려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정부 재정이 악화되는 문제도 국민은 당장 관심이 없을 겁니다. 결국 민주당의 부자감세 주장이나 정부 재정 악화 주장보다는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조기 예산 집행을 통한 경기 활성화"가 국민에게는 더 호소력 있게 들릴 겁니다.
일단 여론 확보를 위한 전술전에서 민주당은 여당에게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내년에 정부 여당이 경제를 살리는데 실패하거나 엄청난 정부재정상의 혼란을 가져온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여하튼 민주당의 이런 전술 전에 있어서나 명분싸움에서의 열세는 수 적인 열세와도 무관치 않을 겁니다. 기획재정위 소위에서의 '감세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이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야당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부가세 문제를 놓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계속됐고, 한나라당이 강행처리에 나서려 하면서 민주당이 막아서면서 몸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부가세 문제는 민주당이 주장하던 바를 관철시키지 못한 채 정부여당으로부터 아주 부분적인 양보를 얻어내는데 그쳤습니다. 민주당이 부자감세라고 주장하던 소득세, 양도세, 법인세 등도 일부 조정을 통해 대부분 통과됐습니다. 유일하게 상속세와 증여세만 다음으로 처리를 미뤘습니다. 민주당의 전략적 목표가 전술적 오류에 막혀 스스로 철회되는 상황이 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처리 시기에 있어서도 민주당은 큰 소득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법에 따라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를 주장하며 압박해온 한나라당에 맞서 졸속심사를 내걸며 최소 20일 정도 더 해야 한다고 민주당이 맞섰으나 결국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로 12일에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9일 처리를 고집했던 여당이 3일을 양보하고, 15일 처리를 주장했던 민주당이 3일을 양보한 것입니다. "선진당을 한나라당 2중대"라고 비난한 민주당과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선진당간에 감정싸움이 변수가 되고는 있지만 일단 12일 처리 합의가 유력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민주당이 여당에게 밀리면서 민주당내에서 강경파들의 독립적 움직임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반발기류도 확산되는 분위깁니다. 한나라당이 선진당과의 전술적 공동보조를 취할 때마다 번번히 고립됐던 민주당은 고민 거리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한나라당-선진당 공동보조에 대응하기 위해 민노당과 손을 잡자니 너무 강경 좌파 노선으로 흐르면서 '중산 서민층'으로부터 괴리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중산 시민층을 지지기반으로 표방하는 민주당이 정책적으로 한나라당과 뚜렷한 대립각을 취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민주당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산-서민층 지지를 얻기위해 한나라당에게 전략-전술적으로 밀리거나 양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반면, 정치적 측면에서는 보수노선을 걷는 한나라당-선진당과 차별화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사이버 모욕죄 도입, 국정원법 개정 문제 등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기가 용이한 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가지 고민이 있을 겁니다. 일단 국민 대다수가 지금과 같은 경제난 속에서는 정치적 쟁점보다는 경제적 난제 해결을 우선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모든 정치쟁점 법안 처리를 (FTA동의안조차도) 예산안 처리 이후로 미뤄둔 것도 이런 국민의 뜻을 읽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민주당이 정부 여당에게 몰리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예산안 처리가 끝나고 나면 올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 간에 실랑이가 벌어질 겁니다. 경제현안이 아닌 만큼 민주당이 그간의 불리함을 딛고 일어설 기회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이 정치현안에 대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국민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관심입니다. 정치적 현안의 중요성이 어떠하건 간에 당장 내일 살 길이 걱정스러운 서민들에게는 정치 현안은 관심 밖일 겁니다. 대통령의 지지도와 무관하게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여전히 40% 안팎을 유지하는 것도 아직도 국민들은 정부 여당이 경제를 살려줄 걸로 믿는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큰 실수, 이를테면 경제회생에 대한 실패나 엄청난 부정부패가 생기지 않는 한 국민의 이런 기대감은 민주당의 고립감을 증가시킬 겁니다. 다만 경제가 살아난다 해도 서민 중산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고조된다면 상황은 다소 달라질 겁니다. 지금 민주당이 노선을 놓고 고민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겁니다.
정치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여당에게는 야당이 상대요, 야당에게는 여당이 상대입니다. 동시에 여당이든 야당이든 공동의 상대가 있으니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만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