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때문에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는데..이제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 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74. 당시 36세) 씨가 36년 만에 초등학생을 살해한 혐의를 벗고 비로소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28일 오후 춘천지법에서 열린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자 정 씨는 살인범으로 억울하게 지내 온 모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 듯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조용했던 방청석은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 씨로서는 당시 사건 이후 살인범으로 낙인찍힌 지 36년 만이자,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1999년 서울고법에 첫 재심을 제기한 지 10년 만의 명예회복인 셈이다.
이날 법정 문을 나선 정 씨는 "만약 어떤 사람이 옳지 못한 일을 만들어 이름을 알리면 사람은 누구도 그를 해하지 못하지만 하늘은 반드시 벌한다"라는 '명심보감 천명편'을 인용해 당시 수사과정에서 자신에게 가혹행위를 한 경찰관에 대한 감정을 털어놨다.
정 씨는 "당시 가혹행위를 한 경찰관은 명심보감의 말처럼 옳지 못한 일을 하고도 특진을 하는 등 이름을 알렸지만 결국 하늘이 그들을 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씨는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는 와중에도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고 용서했던 것처럼 나도 이제는 고문 경찰관을 용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 씨의 재심이 열린 춘천지법 법정에는 사건 발생 이후 떨어져 지내 오던 아내(68)와 아들(46), 손자 등 정 씨의 일가족을 비롯해 사건의 변론을 맡은 임영화 변호사와 1차 재심 변론을 담당했던 박찬운 변호사 등이 참석해 36년 만에 살인범의 누명을 벗은 정 씨와 감격의 순간을 함께 했다.
정 씨는 "'무죄'라는 말을 듣자마자 목발을 짚고 법정까지 동행해 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며 "사건 직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채 모진 세월을 감내하며 나를 믿고 기다려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 씨의 1차 재심 사건의 변론을 담당했던 박 교수는 "36년 간 통한의 세월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라며 "오로지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믿음으로 '피고인은 무죄'라는 이 말 한마디를 듣고자 지금껏 모진 목숨을 이어 온 정 씨에게 경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1972년 9월 27일 경찰간부의 딸을 살해한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정 씨는 이듬해 3월 1심인 춘천지법에서 강간치상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같은 해 8월과 11월 서울고법과 대법원에 각각 항소와 상고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이후 15년 간 복역한 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된 정 씨는 이듬해인 1988년 고향인 춘천을 등지고 전북에 내려가 신학공부에 매진한 끝에 목사 안수를 받고 현재까지 개척교회에서 목회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교도소 복역 벌어진 가족 해체와 아내의 교통사고 등으로 가정마저 풍비박산난 정 씨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01년 10월 기각되면서 정 씨의 억울함은 영원히 묻히는 듯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자신의 결백을 호소한 정 씨는 2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재심권고 결정을 이끌어 냈다.
무죄를 선고 받은 정 씨는 변호인과 논의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수행할 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춘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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