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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운 겨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저소득층 노숙인 신세로 전락…"배춧국도 감사"

<※편집자주: 미국발(發)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지구촌이 깊은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의 문턱에 서 있는 소외계층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합뉴스 사회부는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울 것 같은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주말인 22일 오후 서울역 우체국 지하보도 안.

대낮부터 술에 벌겋게 취한 한 노숙인이 가수 이미자씨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한 50대 아주머니는 고약한 냄새가 너무 싫은지 아예 코를 틀어막았다.

서울역 앞에서 노숙을 시작한지 막 한달이 됐다는 김모(55)씨 역시 눈살을 찌푸린다.

비록 자신도 노숙 신세지만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하는 노숙인과는 `출신성분'이 다르다는 자존심이 남아 있어서일까.

김씨에게도 한때는 안정된 직장이 있었다. 그러나 5년 전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냉동트럭을 구해 개인 납품업을 하려던 것이 화근이었다. 관련 회사가 망하면서 한꺼번에 모든 걸 날려버린 김씨는 그 뒤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 왔다.

그나마 한달 전까는 공사장 인근 숙명여대 앞 여인숙에서 월 20만원짜리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지만 추석 지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 서울역 우체국 지하보도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겨울이면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거리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경기불황으로 일감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번 주는 완전히 공쳤고 지난주에 간신히 하루 일했는데 그것도 비가와서 일당의 반값밖에 못 벌었다"고 하소연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아침식사는 늘 인근 교회에서 배급해주는 무료급식에 의존한다. 게다가 요즈음은 경제난 탓인지 고기반찬을 구경하기 힘들어 먹고 돌아서면 금방 허기가 진다.

이전엔 일주일에 한두번이라도 고깃국, 소시지, 제육볶음 같은 반찬이 나왔는데 요즘엔 배춧국에 김치, 마늘쫑, 깻잎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김씨 같은 노숙자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니 환율 상승이니 하는 얘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도 옛날보다 돈이 없구나"라는 인식은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나 쉽게 피부에 와 닿는다.

"교회도 들어오는 게 있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을 먹일 게 아닌가. (음식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감사하게 먹는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김씨를 만나기 몇 시간 전 노숙인들의 `집결지'인 서울역 앞.

옛 서울역사에 붙어있는 서울역 문화관 건물 왼쪽 출입구 앞에는 여기 자리를 잡은 지 오래 돼 보이는 노숙인 예닐곱명이 모여 앉아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 주는 건 겹으로 깐 얇은 은색 돗자리와 때가 잔뜩 낀 남루한 이불 대여섯채가 고작이었다.

주변으로 비둘기 10여마리가 모여들자 행인들은 노숙인 무리와 비둘기를 멀찌감치 피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 찾아온 불황은 가난한 이웃에게 눈길조차 주기 싫을 정도로 인심을 팍팍하게 만든 것인가.

서울역 앞에서 노숙 생활을 한 지 3년째라는 이모(41)씨는 "전에는 사람들이 돈 만원, 하다못해 몇 천원이라도 주고 갔는데 요새는 동전이나 찾아서 주고 그것도 없으면 그냥 가버린다"고 귀띔했다.

고달픈 일상을 잊는데는 역시 소주가 제격이란다. 그런데 한푼 두푼 모아 소주를 사고 나면 끼니가 문제다. 결국 노숙인들이 하루 종일 챙겨 먹는 식사라곤 교회나 무료급식업체에서 해결하는 점심 한끼 뿐.

"그나마 줄을 일찍 서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고 이씨는 푸념했다. 경기 악화로 최근들어 인근의 쪽방촌 사람들이나 영등포, 청량리 주변의 노숙인들까지 몰려와 무료급식 앞에 줄을 서기 때문이란다.

서울역 광장에 있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길거리 상담소에 따르면 최근 무료급식에서 나눠주는 밥으로 한끼를 채우는 인원이 평균 500∼600명에 달한다.

상담원 백정선(68)씨는 "여기서 노숙하는 분들은 대략 200∼300명인데 밥 먹을 때 보면 최고 800명까지도 늘어난다"며 "다른 해에 비해 올해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요즘 서울역 안이나 주변을 둘러 보면 전에 못 보던 얼굴들이 많이 눈에 띈다"며 "한 20명 정도가 새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공사현장에서 `노가다'를 하다 일거리가 끊겨 온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절기상 '소설'(小雪). 이날 하루동안 서울역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이번 겨울을 제대로 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으로 뒤덮여 있는 듯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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