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5%(9월말) ->4%(11월 초)라고 했다가 불과 2주도 안 돼 다시 2%라고 수정했던 재정부 장관이나 코스피 지수 1200선일 때 "지금이 바닥" 이라고 했던 금융위원장를 비롯해 베어스턴스 구제금융,한미 통화스왑, 세계 중앙은행의 동시 금리인하, 오바마 당선 등 뭔가 조금만 기회가 생기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설파하는 전문가들이죠.
지금도 "내년이면 미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좋아질 것" 이라든지 아직 우리에게 닥칠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위기는 기회" 라고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2006년에 예측했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나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만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베어스턴스의 몰락을 맞췄으나 당국에 의해 '유언비어 유포자'로 지목돼 '절필'을 해야 했던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 등은 앞으로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익명과 실명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같은 통찰력을 보인 '미네르바'는 우리나라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정부 당국자들은 미네르바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반면 '금융위기 예언자' 루비니 교수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토론회에 주요 인사로 초청돼 일관되게 '암울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전히 각종 경제지표를 통찰력있게 해석하면서 언제나 한 발 먼저 다가올 상황을 맞추고 있고 오바마 당선자나 미 민주당 의회지도자들은 물론 세계 주요 정부와 IMF 정책에도 비공식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점은 그런 루비니 교수가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수출 위주의 경제 그리고 예금보다 빚이 많은 은행 상황 등을 들어 아시아에서는 우리 나라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경제위기 속도로 볼 때 50년 만의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며 "최소한 2년은 미국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져있는 장기불황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8개월 정도면 회복됐던 지난 1991년이나 2001년 경기침체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겁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정부를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특단의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돌지 않아 초우량 기업까지 흔들리는 신용경색이 계속되고 있고, 세계 경제의 하강 속도는 빨라지고 있는 것, 다시말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생기는 걸까요? 우선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환율 급등과 주가 급락, 그리고 채권금리 상승
2주 전 글에서 설명드렸듯이 환율과 주가는 문제의 결과입니다. 환율급등의 원인은 헤지펀드 런(Hedge Fund Run)에 처한 외국인들이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팔고 이를 달러로 바꾸는데다 은행들이 받을 돈은 장기로 계약한 뒤 달러로 갚을 빚은 단기로 조달했는데 국제적 신용경색으로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연말연초에 돈을 갚기 위해 달러를 확보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여기에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업체들의 실적이 줄고 있고 이들이 번 달러도 대부분 내놓았습니다. 쉽게말해 달러를 찾는 사람은 넘쳐나고 공급되는 달러는 적으니 달러 가치가 오를 수 밖에 없는 거죠.
우리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확보한 300억 달러나 중국,일본과 추가로 통화스와프를 한다고 해도 이 돈은 환율방어를 위해서는 쓸 수 없습니다. 조건이 그렇습니다. 그동안 환율방어를 위해 쓰느라 외환보유고도 이제 2천억 달러를 겨우 넘는 수준일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외환보유고 감소와 환율 급변동, 은행부채, 수출감소,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 등을 걱정하며 한국에서 돈을 빼고 있고 이로인해 주가는 급락하고 이자를 좀더 줘야 채권을 사주기때문에 채권금리는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돌파해 외환위기 당시 수준인 1800원 선을 얼마남지 않았고,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가장 높았을 때 대비 무려 52%나 떨어지며 아래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IT 버블 당시 수준으로 급락을 했습니다.
문제는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선 최근 불안을 주도하고 있는 헤지펀드는 10월 한 달 동안 무려 400억 달러 어치 자산을 세계 금융시장에서 팔았습니다. 실적이 형편없어 망하는 바람에 청산한 헤지펀드도 있고 분기별로 환매를 하도록 돼 있는 조건때문에 분기말에 환매요구가 급증할 것을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주로 한국,중국,대만,브라질 등 신흥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는데 연기금이 주식을 사주고 있는 한국에서 빠져나간 규모가 많습니다.
400억 달러는 헤지펀드를 조사해 온 시카고에 있는 Hedge Fund Research가 1990년부터 조사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인데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대형 헤지펀드는 이미 자산의 50%는 현금으로 확보하려하고 있고, 나머지도 미 국채 같은 상대적인 안전자산으로 보유하려는 분위기입니다. 헤지펀드 업계 CEO는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헤지펀드 업계가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자산이 50배나 거쳐 2조 달러 규모가 됐는데 내년까지 이런 환매 흐름이 지속돼 1조 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팔아대는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수출 구세주'가 될 수 없는 중국
그나마 수출이 버텨주면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일 텐데 세계 경기침체는 우리처럼 수출비중이 높고 대외경제 의존도가 80이나 되는 나라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수출하는 미국,유럽,일본 등이 모두 경기침체에 빠졌고 소비가 극도로 줄고 있습니다. 중국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난 글 '오바마도 막지못할 경기침체' 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국은 8% 성장을 하지 않으면 사회불안이 야기될 수 있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아래 그림에서처럼 중국이 수출하는 나라들이 결국 내년에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소비가 갈수록 더 줄어들 나라들이기 때문이죠. 중국 역시 수출이 쉽지 않은데 소득이 줄고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소비를 할 리 없습니다. 저축률이 0% 수준인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저축률이 40%인 나라이기때문이죠.
결국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수출할 물건을 사줄 세계 소비자들이 줄게 되고, 우리 시장에서 떠나는 외국 투자자들로 인해 환율,주가,채권 시장이 급등락을 하는 위기를 반복적으로 겪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나 오바마 당선 등과 같은 단기적인 호재로 잠시 반등하는 모습은 나타날 수 있겠지만 앞서 설명한 본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때문에 수시로 어려움을 겪게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과 '빚의 대국' 이라는 미국 가계보다 더 높은 가처분 소득대비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계 부채 문제는 앞으로 만나게 될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좀더 긴 설명이 필요하기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오락가락 한 건 위주 정책
"경제대책이 석 달에 한 번씩 나온다면 먼저 발표한 정책이 엉터리거나 나중에 발표한 정책이 급조된 것이다"
국책연구기관 KDI 원장이 몇 달도 안 되는 사이 이런 저런 경제종합대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를 꼬집은 말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이 깜짝 놀랄 정도의 건설,저축은행, 조선 등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 발표와 조속한 시행 그리고 돈을 받으면 생계형 소비를 할 수 밖에 없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적인 대규모 재정지출인데 이와는 반대로 감세나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부실 건설사를 위한 미분양 매입이나 하고 건설 경기부양책을 찔끔씩 내놓고 있는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을 빗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작 필요한 건설사, 저축은행, 조선업 등에 대한 구조 조정에 대해선 갈팡질팡하고 있으면서 실제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은행과는 상의도 없이 '채권시장 안정 펀드 10조원 조성'을 덜컥 발표하거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재정부에서 먼저 흘리는 등 한 건 위주 정책에만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상황을 유동성 위기 정도로 보고 있는 것 아닌 지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들어보니 결국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성태 한은 총재에게 각각 사과전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빙산은 경기침체와 자산가치 하락이 동시에 오는 전 세계적인 'Stag-Deflation'(Stagnation:경기침체+Deflation:물가.자산가치 하락)입니다. 그리고 이 빙산은 우리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와 맞물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에게는 단기적인 뉴스에 낙관론을 남발하거나 한 건 위주의 뒷북치기 대책을 쏟아낼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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