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청바지 입고 돌아다니며 본 오페라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편지 띄운 때가 언제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동안 소식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영국에서 띄운 편지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1년간의 영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죠? 이제 업무 복귀한 지 한 달 반 정도 됐습니다. 예전에 근무했던 문화부가 아니라, 미래부라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았습니다. 미래부는 보도국 소속이긴 합니다만, SBS가 매년 주최하는 '미래한국리포트'와 '서울디지털포럼'을 주관하는 부서라서 데일리 뉴스 취재를 주로 하는 다른 부서와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이제는 공연 담당 기자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공연 보고 수다 떠는 제 취미생활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사실 영국 연수 생활 막판에는 논문 마무리와 귀국 준비를 함께 하느라, 돌아와서는 바로 11월 초에 열렸던 제6차 미래한국리포트 '기후의 역습, 지구의 위기와 한반도의 미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한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미래한국리포트 행사가 끝나고 나서 일단 한숨 돌린 상태입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좀 생기네요. 그래서 앞으로 되도록 자주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일단은 영국에서 봤던 공연들 얘기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해 놓으려고요.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린 글입니다.

-----

오페라 관객이 아닌 일반인들의 오페라에 대한 인식은 아마 대개 비슷할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호화로운 오페라 하우스에, 잘 차려 입은 관객들이 모여 즐기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로 가득 찬, 그들만의 장르'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영국에서 이런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버리는 오페라 공연을 만났다. 

2008년 8월 12일. 영국 버밍엄 시내 외곽 공장지대. 이제는 버려진 옛 고무공장 건물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가 개막됐다.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세리아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자. 

오페라 제목인 '이도메네오'는 그리스 크레타 섬의 이도메네오 왕을 가리킨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전쟁포로들을 싣고 귀환하던 이도메네오 왕은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바다의 신 넵튠에게 '뭍에 도착해 처음 만나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맹세를 하고서야 목숨을 건진다. 전쟁포로인 트로이의 일리아 공주는 이도메네오 왕의 아들인 이다만테에 의해 구조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데, 이다만테를 사모해온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 공주는 강한 증오와 질투를 느낀다. 천신만고 끝에 뭍에 오른 이도메네오 왕은 한 젊은이를 만나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이다만테 왕자였다. 오페라 '이도메네오'는 자신이 한 맹세 때문에 아들을 죽여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랑과 질투, 운명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도메네오'의 공연 단체는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 영국 출신의 오페라 연출 거장 그레이엄 빅(Graham Vick)이 1987년에 창립한 단체다. 그레이엄 빅의 연출작은 로열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라 스칼라 등 전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지만,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는 조금 다른 오페라를 지향한다. 'Birmingham opera company is not what you expect from opera!'라는 모토가 보여주듯이. 

과연 '이도메네오'의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부터 일반적인 오페라를 볼 때와는 달랐다. 공연장이 번듯한 오페라 하우스였다면 시내 곳곳에 안내 표지판이라도 있었으련만, 버려진 공장이니 표지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버밍엄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공장 지대, 인적도 별로 없고 쇠락한 느낌이 물씬한 골목을 한참이나 헤매고 다녀야 했다. 주최측이 버밍엄 시청 앞에서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올 걸 후회하다가, 이러다간 공연장을 영영 못 찾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즈음, 관객인 듯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건물을 발견했다. 

뒤쪽 저편으로는 화물 열차가 지나는 선로가 보이고, 한눈에도 오랫동안 방치됐다는 느낌이 물씬한 붉은 벽돌 건물. 오페라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동네다. 관객들은 대부분 수수하고 간편한 옷차림이다. 공연 안내문에 '이동하기에 편한 캐주얼 복장과 신발'을 권한다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냥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갔다. 중국 인민복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게 이채로웠다.

줄을 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건물의 냉기가 확 밀려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물 입구에 선 컴퍼니 직원이 관객 한 명 한 명의 웃옷에 노란색 접착식 메모지를 한 장씩 붙여주는데, 표를 소지한 관객임을 나타내려는 것인가 보다 짐작했다. 조금 작은 방을 지나 본 공연이 열리는 옆 방으로 들어서니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 공간 곳곳에 무대가 설치돼 있었는데, 한쪽은 모래흙을 높이 쌓아 만든 언덕이었다.  

오케스트라 피트도 없고, 관객석도 없다. 그냥 한쪽에 윌리엄 레이시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자리잡고 있었고, 오페라의 장면 장면은 이 공간 곳곳에 배치된 무대들을 옮겨 다니며 진행됐다. 관객들은 이 공간을 옮겨 다니며 연기하는 성악가들을 따라, 역시 이동하면서 구경하면 되는 것이었다. 

무대 장치나 의상은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었는데, 이도메네오 왕은 중국의 마오쩌뚱을 연상시키는 지도자로 설정됐다. 아까 밖에서 봤던 인민복 차림의 사람들은 모두 코러스였다. 수십 명의 코러스는 프로페셔널 성악가뿐 아니라 버밍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이뤄졌다. 다양한 세대와 인종, 직업을 아우르는 집단이었다. 그레이엄 빅의 프로덕션은 이렇게 지역사회 구성원을 오페라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아마추어 코러스는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 때로는 대사까지 하면서, 극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때로는 트로이의 전쟁 포로였고, 때로는 크레타 섬의 시민이었고, 때로는 환희에 들뜬 대중이었고, 때로는 바다괴물에 습격 당한 희생자들이었다.  

이미 관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무의미한 상황. 오페라는 끊임없이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오페라 초반, 전쟁 포로로 잡혀온 트로이의 일리아 공주에게 이다만테 왕자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일리아 공주는 가슴에 포로의 표지를 달고 있다. 이다만테 왕자는 일리아 공주에게 '당신은 이제 자유의 몸'이라며 이 표지를 떼어 자신의 가슴에 달고는 '이제 내가 사랑의 포로'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적국의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게 죄스러운 일리아 공주는 이를 거부하며 표지를 되돌려 받는다. 

이 포로의 '표지'가, 내가 조금 전 건물 입구에서 붙이고 들어온 노란색 접착식 메모지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조금 뒤 이어진 트로이 포로의 석방 장면에서 코러스들은 관객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면서 옷에 달린 노란색 메모지를 하나하나 떼어준다. 이들은 활짝 웃으며 '당신은 이제 자유예요!'라고 속삭이고, 화합의 악수를 청한다. 나 또한 크레타 섬으로 잡혀온 트로이의 전쟁 포로였던 것이다! 

이도메네오 역의 테너 Paul Nilon, 일리아 공주 역의 소프라노 Anna Dennis, 이다만테 왕자 역의 Mark Wilde, 엘렉트라 역의 Donna Bateman 등, 주역은 대부분 영국 출신의 성악가들이 맡았다. 모든 노래는 영어로 불려졌는데, 가창력도 대체로 훌륭했지만, 손 내밀면 잡힐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생생한 연기를 지켜보는 느낌은 정말 강력한 것이었다. 

이다만테 왕자가 일리아 공주와 맺어지는 걸 보고 미쳐버린 엘렉트라 공주가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 엘렉트라 공주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차가운 흙 위에 몸을 누이고, 그 몸 위로 흙이 뿌려지는 광경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또 일리아 공주의 우아한 음성과 비련에 가득찬 자태에 반했고, 이도메네오 왕의 슬픔을 함께 느꼈다. 마치 도살장 장면처럼 연출된 피날레, 이도메네오 왕은 피 묻은 앞치마를 입고, 도살용 큰 칼을 들고, 아들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아버지의 격정 어린 슬픔을 온 몸으로 뿜어냈다. 아무리 좋은 오페라 극장의 좋은 좌석에 앉는다 해도 이렇게 가까이서, 실감나게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 있을까.

관객들도 공연이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계속 옮겨 다녀야 했기에 가끔 동선이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코러스들이 안내해 줬다. 때로는 연출가인 그레이엄 빅 자신이 앞장서서 관객을 가수들 가까이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나는 공연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안내해 줬던 아저씨가 연출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연이 끝난 뒤, 모든 출연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지만, 특히 아마추어 로 참여해 땀 흘린 코러스들에게 쏟아진 박수는 더욱 의미 있는 것이었다. 3시간이 넘는 공연, 대부분의 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 관람은 아주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10살 난 딸 은우를 데려가면서 과연 끝까지 잘 볼 수 있을까 약간 걱정했는데, 은우도 딴 짓 하지 않고 공연에 몰입했으니, 이 색다른 오페라의 흡인력은 아주 컸던 셈이다.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는 '오페라가 정부 지원금으로 유지되는 부자들의 오락(a subsidized plaything for the rich)' 이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그레이엄 빅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창설한 단체다. 내가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에 대해 알게 되고, 공연을 보러 가게 된 것은 '이도메네오' 프로젝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마케팅을 담당했던 친구 덕분이었다. 이 친구는 마케팅 업무를 맡았으면서도 공연 중에는 건물 밖에 설치된 간이 바에서 바텐더까지 겸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의 상근 직원은 단 세 명. 프로젝트 별로 성악가를 섭외하고, 직원들을 채용한다고 했다.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가 이렇게 구성된 데에는 '작고, 유연하고, 민첩한' 조직이 사회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그레이엄 빅의 신념도 한 이유가 됐다. 그레이엄 빅은 '사회 전체를 끌어안고,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빨리 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오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현대의 오페라 하우스가 너무 크고, 관객과 무대의 상호 작용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바그너 이전까지, 오페라는 항상 조명이 켜진 채로 공연돼 왔다. 즉 공연자는 관객과 같은 공간과 조명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예술의 역사는 생동하는 관객 참여의 역사였다. 관객이 어둠 속으로 물러나고, 오케스트라가 무대와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바이로이트에서 시작됐다. 바그너는 자신의 '성스러운 축제'를 설계하면서, 유감스럽게도 관객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에서 단순한 관찰자로 격하시켜버렸다. 지금은 표준이 돼 버린 바그너의 공연 방식에는 관객과 무대 간에 생동하는 상호작용이 결여돼 있다."(Guardian 2003년 10월 20일)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는 그래서 일반적인 오페라 극장을 벗어나, 레저 센터나 불타버린 옛 무도회장 같은 평범하지 않은 장소를 찾아 공연을 열기 시작한다.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관객들도 꾸준히 늘어났다. 그러나 어느 날 그레이엄 빅은 공연이 열린 레저 센터 주차장에 비싼 독일산 자동차가 즐비하게 주차돼 있는 걸 발견하고 실망한다. 아무리 오페라 하우스가 아닌 곳에서 공연을 열더라도 관객은 여전히 공연이 열린 그 지역 대다수의 생활인들과는 별 관계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2000년부터 그레이엄 빅은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서로 다른 연령과 직업, 인종적 배경을 가진, 버밍엄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지역민들을 공연에 참여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첫 실험이었던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는 '관객과 출연진이 한 데 섞여 누가 보체크 세계에 속해 있고, 누가 속해 있지 않은지 구별할 수 없는' 공연으로 창조됐다. 내가 본 '이도메네오' 역시 이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레이엄 빅은 말한다. '오페라의 미래가 단지 일반인들과 격리된 부자들의 손에만 달려있다면 그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가! 단순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페라는 돈이 많이 드는 장르다. 표만 팔아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고, 정부의 보조금이든, 기업의 협찬이든, 대개 외부 지원이 있어야 하는 구조다. 이 지원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페라가 더 이상 '그들만의 장르'로만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버려진 공장 건물에서 공연된 오페라 '이도메네오'.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레이엄 빅의 오페라 실험은 계속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실험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연 사진을 볼 수 있는 링크를 첨부한다. http://www.eyesky.co.uk/boc/index.html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의 홈페이지는 http://www.birminghamopera.org.uk/overview.html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 올리고 싶지만, 남의 카메라를 빌려 찍은 사진 파일을 아직 받지 못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