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폐기 의지를 확인하는 기로에 서있다."
정부 소식통은 14일 이른바 시료채취(sampling)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북한의 의지와 연결해서 분석했다.
북한이 핵폐기 의지를 갖고 있다면 시료채취를 거부할 필요가 없으며 이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강조했다.
1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92년부터 북한 핵시설을 사찰하면서 영변 5MW 원자로에서 꺼낸 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해 얻어낸 플루토늄 추출량을 놓고 북한과 첨예하게 맞섰다.
북한은 당시 80g에 불과한 미미한 양의 플루토늄만 추출했다고 신고했으나 IAEA와 미국은 적어도 kg단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양측의 입장이 맞서자 IAEA는 1993년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의문의 미신고 시설 2곳에 대한 특별사찰을 하기로 했다.
미신고 시설은 바로 폐기물 저장소로, IAEA는 이곳의 시료를 채취해 분석하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보듯 북한이 언제부터 몇차례에 걸쳐 재처리를 했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했는 지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당시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IAEA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이로 인해 이른바 제1차 핵위기가 발발했다.
결국 시료채취가 핵위기를 촉발한 것이고 그런 상황이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2일 담화에서 미국과 합의한 검증 방법을 '현장방문, 문건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로 한정했다.
이는 지난달 11일 미국이 발표한 것과는 크게 다른 내용이다. 당시 미 국무부는 '샘플링과 법의학적 활동을 포함해 과학적인 절차의 이용에 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북한이 밝힌 내용에는 시료채취라는 대목이 없을 뿐 아니라 핵시설에 대한 접근도 '현장방문'이라고 표현했다.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결국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목표가 달성되자 다시 진실의 문을 닫으려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처사에 대해 많은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북한의 담화는 더이상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있어 보인다. 문제를 풀기 위해 북미 직접 대화의지를 천명한 오바마 행정부가 '시료채취' 문제로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비우호적일 경우 무력행사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간단치 않고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에 강경카드를 구사하기는 싶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북한이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핵보유국 행세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시료채취를 거부할 경우 북한 정권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북미 직접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이 이 시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오바마 진영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부시 행정부가 고안해낸 다자협상인 6자회담의 미래가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당장 해체되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협상에 치중할 경우 6자회담의 기능은 사실상 '불능화'될 가능성이 크다는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난관을 타개할 방도가 잘 안보인다는 점이다.
일단 '과학적 절차'라는 표현으로 검증의정서를 채택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시료채취를 비핵화 3단계의 과제로 넘기자는 것이지만 일본은 이에 대해 '시료채취를 결국 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분명한 반대입장을 피력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비판적이다.
결국 미국이 북한과의 추가협의를 통해 '시료채취'를 내용적으로 보장하는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북한이 응할 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북한은 에너지 지원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불능화 속도를 늦추면서 위기감을 다시 조성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시료채취 둘러싼 진실게임…북한 노림수는
오바마정부에 '존재감 과시'…직접대화 통해 최대치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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