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 전쯤 집안어른이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시는 바람에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사실 먼저 가셨고 저는 근무 마치고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앉아있기도 힘드셨던 이 어르신네가 다른 환자 가족 틈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번갈아하며 불편하게 계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간호사에게 따지듯이 물었죠.
"아니, 응급치료든 뭐를 받기까지 환자가 안정을 취할 공간은 줘야하는 것 아닙니까?"
간호사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다 그렇게 계세요. 보면 아시잖아요, 자리가 없어요."
간호사분 말이야 맞았습니다.
아픈 기색이 역력한 분들이 참 아픈 표정과 자세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응급실 앞 복도엔 병상이 없어 침대 하나 놓고 누워있는 환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환자가 있을 병상이 부족하니까 병상을 늘려야 합니다. 전국의 병원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빅 5'라는 서울의 큰 병원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은 각각 평균 병상수는 2천 개 안팎인데요, 2015년쯤이 되면 이 다섯 군데 병원 병상만 4천 개 정도가 더 늘어납니다.
그때가 되면 병상 부족 현상.. 해소될까요.
-최근 한 조사를 보니 전국 모든 병·의원의 병상수는 40만 개 정도라고 합니다. 이중에서 적정 급성기 병상수가 28만 개가량이라는데, 급성기가 아닌 환자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병상은 남아도는 상태라는 거죠.
정리하면 큰 병원엔 환자가 몰리고, 중소병원은 환자가 안 와서 휴, 폐업까지 하는 상황, 병상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환자들이 병원에 골고루 가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중소병원 계속 망해가면 환자들에겐 의료의 접근성이 그만큼 떨어집니다. 대형병원에 더 몰리면 기다리는 시간도 늘어나고, 서비스 질도 낮아질 수밖에... 집 근처 병원은 다 망해서 갈 곳도 없고...
의료 관련해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문제,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있습니다. 상급 병원으로 갈수록 건강보험 수가는 더 높습니다. 환자가 많아지면 건보 지출도 늘어납니다. 중소병원, 의원들은 어떻게든 환자를 끌어야하고, 도산하는 건 막아야 합니다.
왜 환자들은 대형 병원을 선호할까요.
아무래도, '아무래도...'의 주술 같습니다. 감기에 걸려도, 맹장염이어도 아무래도...다리가 부러졌어도, 허리를 삐끗해도 아무래도...큰 병원이 아무래도 낫지 않겠냐 하는 주문이 우리를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래도..가 강력한 주술이긴 하지만, 환자들이 근거 없이 무조건 큰 병원만 선호하진 않을 겁니다. 어떤 게 먼저였냐를 따지기 힘들겠지만 의료장비나 실력있는 의료진, 환자 편의시설 등은 역시 아무래도^^ 큰 병원이 나을테고,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병원은 그보다는 못하겠죠.
환자 쏠림 현상은 이미 오래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가속화해 그 격차는 더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집단으로 볼 때 그런 경향이라는 거고, 개별 중소병원 중에는 우수한 시설, 장비, 의료진을 갖춘 병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현상은 이러한데, 이쪽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의료전달체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의료전달체계를 잠깐 설명드리면,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1989년부터 시작된 제도인데 병, 의원을 아무렇게나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게 아니라 질환 정도, 단계별로 가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당시에도 이미 큰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 문제였기 때문에 이 체계하에서는 환자들이 의원과 병원을 거친 뒤에야 종합병원을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의료서비스가 국민에게 체계적으로 전달되도록 한다는 의미겠죠. 애초에는 4단계, 의원-> 병원-> 종합병원->종합전문병원였는데요, 3,4단계가 좀 애매한 측면이 커서, 흔히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이라고 부르는 3단계로 바꼈습니다.
그래서 의원은 경증 환자 외래진료 위주로 진료하고, 병원에서는 입원 진료, 종합병원에서는 중증 질환, 전문치료가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는데요, (이를 위해 필수진료과목이라든가, 전속 전문의, 응급실, 중환자실 등 각 요양기관별로 갖춰야하는 요건이 있습니다. 저도 세세히는 잘 모르니까 생략...)
그렇다고 환자들이 1차를 건너뛰고 2차나 3차 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불법 행위라 처벌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진료의뢰서라는 걸 만들어, 상급 단계 병원으로 가려면 이걸 갖고 가도록 했습니다.
이에 대한 통제는 건강보험을 통해서 하는데요, 블로그를 통해 여러 차례 설명한 적이 있는 본인부담비율을 상급 단계로 갈수록 높였고, 진료의뢰서가 없으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통제장치는 사실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만 제대로 낫는다면 돈을 얼마를 더 줘도 된다는 게 환자들 마음이니까요. 진료의뢰서라는 것도, 대형병원 가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기부터 바로 오시면 건강보험 안되거든요. 진료의뢰서 떼오세요."
관련해서 아무 의원 가도 진료의뢰서 떼달라고 하면 바로바로 해주고요, 조금 더 친절한 대형병원에서는 이렇게 안내해주기도 하죠.
"가정의학과 가시면 진료의뢰서 써주니까 떼오세요."
이래저래해서 "우리나라만큼 진료받기 쉬운 나라도 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좋게 보면 병원 문턱이 그만큼 낮은 것이지만, 의료전달체계가 그만큼 작동 못하는 것이기도 하죠.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복지부가 펴고 있는 대책들은 대충 이렇습니다.
요약하면 각 단계별 역할 분담을 더 확실히 하는 것인데요, 우선 3차 종합병원에서는 전문치료 중심, 의료인 양성 기능까지 함께 하는 종합전문병원부터 재정비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전국엔 종합전문병원(요양기관)이 43개 있는데요, 다른 병원이 새로 진입하려고 진입 자체가 막혀 있었는데 이를 다시 지정하기로 했습니다.
쉽게 말해 종합전문병원이란 계급장을 떼고, 원하는 병원들끼리 경쟁해서 우수기관순으로 정한다는 겁니다. 지난 7월 신청, 이후 서류심사, 현장실사까지 거의 마쳐 이달 말이면 발표되는데 이 평가에서 배점이 높은 게 중증 질환에 대한 진료 실적이라고 합니다.
종합전문병원에서 탈락하면 가만히 있어도 병원 수입이 확 줄기 때문에(이는 건강보험 수가 가산율이 낮아지기 때문) 병원들이 알아서 중증 질환 치료 중심으로 간다는 거죠.
또 동네 의원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건 아니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연구용역을 통해 준비하는 단계지만, 일종의 주치의 개념을 도입해 1차 진료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 건강관리, 예방서비스까지 할 수 있게 장기적으로 유도해간다는 방침입니다.
환자,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값싸게 받을 수 있는 게 최고겠지만, 정부나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의료기관들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병원 경영이 잘 돼야할테고요, 정부는 의료서비스 전달체계와 함께, 의료기관들이 도산하는 사태도 막아야하고, 의료인 양성도 잘 되도록 북돋아야하고 희귀난치병을 포함한 중증질환 치료나 연구 등도 한편으론 잘 이뤄지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을 해야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제가 잘 몰라서, 혹은 조금은 알지만 거론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더욱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 많아,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마무리하면서 뭔가 적당한 말을 적고 싶은데, 어떤 게 적당하거나 적절할 지 모르겠습니다. 복지부 취지대로 잘 되면 좋겠다, 부터 잘될 턱이 없다...까지. 나이가 들수록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짙어지는 사회, 좋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우리의 이해가 서로 얽힌 탓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 [편집자주] 2003년에 SBS에 입사한 심영구 기자는 사회1부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참 넓고 깊고 복잡하고 중요한 분야'라면서 건강하게 오래사는데 도움이 되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합니다. 사내커플로 결혼한 심 기자는 부부가 방송 기자로 활약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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