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보다 풍자, 골계의 미학을 통해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요"(류전윈)
"게다가 유머는 몸에도 좋죠. 마지막 희망이기도 하고요"(성석제)
소설가 성석제(48)씨와 중국 소설가 류전윈(50.劉震雲), 양국을 대표하는 '입담꾼'들이 만났다.
'핸드폰', '닭털 같은 나날' 등에 이어 최근 '객소리 가득 찬 가슴'(문학과지성사 펴냄)을 국내에 출간한 류전윈은 지난 6일 방한해 성씨와 함께 세계관과 문학관에 대한 한바탕 뼈가 있는 '객소리'를 늘어놓았다.
대담은 사회 없이 두 작가의 자연스러운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통역은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을 번역하기도 한 번역가 겸 소설가 박명애 씨가 맡았다.
▲성석제 = 류 선생은 여러 면모의 작품들을 썼지만 특히 소시민이나 약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경우든 유머가 빠지지는 않는 것 같다. 류 선생에게 '유머'는 하나의 전략인가, 아니면 본래 체질인가.
▲류전윈 = 하층민의 삶을 다룰수록 풍자, 골계의 미학이 들어가 있을 때에야 거기에서 삶의 이면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웃자는 게 아니라 웃고 난 다음에 슬픔을 재음미할 수 있도록 쓴다. 가난한 삶을 비참하게 있는 그대로 그린다면 문학의 역할이 아니다. 풍자하고 비유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객소리…'는 전작들보다는 덜 대중적이지만 단일작품으로는 박사 논문이 가장 많이 쓰인 작품이다. 인간이 하루에 3천 마디 내뱉으면 2천900마디는 객소리, 허튼소리라고 생각하는데 허튼소리 없이 정확한 말만 하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삭막하겠는가.
▲성 = 내가 추구하는 방향하고 비슷하다. 유머로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정말 많고 게다가 유머는 건강에 좋기까지 하다. 문학을 통해 어떤 목표를 성취하고자 악을 쓰는 것보다 유머를 가지고 추구한다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건강에 모두 좋을 것이다. 공격하기보다는 옷깃을 풀게 만드는 식이다.
▲류 = 가장 모순된 상황이나 문제점 있는 사회를 그려나갈 때 가장 황당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리는 것이 효과적인 것 같다. 다 읽은 후 사회의 모순된 상황,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고급스러운 비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먼저 황당해서 웃고, 이런 방식을 취한 작가의 의도를 발견해서 웃고, 마지막으로 저녁에 누웠을 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하고 허탈해서 또 한번 웃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반갑다.
▲성 = 허탈해서 웃는다는 부분을 보면 유머보다는 풍자에 무게가 더 실린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풍자라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의식을 하기 시작하면 이미 유머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객소리…'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세계에 쓸데 없는 말이 너무 많은 데 대한 반작용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류 = 예리하게 잘 봤다. 지구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소식이라고 하는 것 중 90%가 허튼소리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보도되는 뉴스 중 제대로 된 진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 많은 허튼소리에 대한 반작용에서 이 작품을 쓴 것이 맞다.
▲성 =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문학이라는 게 결국 세상에 꽉 차있는 언어 중에서 문장을 얻어내느 것인데 지금은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 안 되는 말들이 넘치고 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반작용이 정련된 문장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더 지독한 헛소리를 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고 있다. '객소리…' 외에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을 쓴 것이 있나.
▲류 = 지금 구상하고 있는 책이 있는데 한바탕의 거짓말, 한바탕의 황당한 이야기에 관한 작품이다. 세계의 정치가들이나 매스미디어에서 쏟아내는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지구촌에 가장 위협적인 폭탄은 거짓말의 덩어리다. 언어의 횡포가 폭탄화되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져 싸우려는 의식조차 없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두렵다.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바깥에서 보면 헛소리가 적을 거 같지만 그 안에서는 헛소리나 망발이 가득 차있다. 사회주의 체제 지도자들의 발언들이 가장 큰 허튼소리다. 그런 면에서 나는 소설가로서 좋은 토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 =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의 정세는 소설 쓰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리한 거 같지 않다. 동시다발적으로 전체가 다 바보가 돼서 절벽으로 다 같이 달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충분히 웃기는 상황이지만 나 자신도 포함돼 있어서 웃을 수가 없다. 마치 한 냄비에 들어있는 것 같은 그런 동조화의 느낌이 소설 쓰는 손을 멈칫거리게 하기도 한다.
▲류 = 그렇다. 처음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멍청해지고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나 역시 멍청해지고 미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주변 모든 사람들과 내가 똑같이 멍청해지고 길들여져가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가는 도정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다.
▲성 = 화제를 바꿔보자. 나는 중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감명 받은 책이 소설보다는 보고문학류였는데 사람들의 삶이 아주 구체적으로 녹아있는 작품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중국문학의 감동과 즐거움은 힘 있는 디테일에서 오는 것 같다.
▲류 = 나도 한국문학을 일부 접했는데 가장 많이 본 것은 최수철의 작품이다. 그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일상에서의 권태, 도시생활의 고독 등을 다룬 것을 보면서 우리와는 다른 세련미와 고급스러움을 느꼈다. 다만 작품 속 유머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런 고급스러움을 바탕으로 유머를 잘 살린 작품이 소개되면 한국 문학이 중국 시장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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