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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마지막 훈수

지난 달 10월 24일이었죠. 그날은 금요일, 검은 금요일로 장식된 날이었습니다.
 
정신 없이 추락하던 코스피 지수가 결국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000 포인트마저 붕괴시켜 버린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 주식 투자자들 대부분이 '대한민국'을 안주 삼아 쓴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켰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노래방에선 서로 어깨동무를 한 상태로 '아 대한민국~'을 열창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아니 하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사흘 뒤인 10월 27일. 월요일이었습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례적으로, 아주 이례적으로 아침 8시부터 긴급 금통위를 열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 뒀다간 정말 큰 일이 날 꺼라는 판단에 따라 모인 뒤 2시간 넘은 열띤 토론 끝에 0.75% 포인트라는 파격적인 사상 최대 금리 인하를 단행했습니다.
 
모두들 이 소식에 치솟던 환율은 떨어지고 추락하던 코스피는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20원 50전 급등하며 1,442원 50전으로 장을 마감했고, 코스피 지수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며 장중 한 때 900선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외국인투자자는 9일째 대규모 순매도를 이어갔고, 개인 투자자들은 하루 동안 3천 5백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아 치워버린 겁니다.
 
(장 마감 바로 직전 연기금이 대규모 순매수에 나서면서 결국 7.70 포인트 오른 946.45로 장을 마치긴 했지만 말이죠)
 
정말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실감나는 하루였습니다.
 
어떤 처방과 대책이 나와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패닉 상태에 빠지면 호재에는 전혀 반응을 않고 조그만 악재에는 재깍재깍 반응한다는 말이 정말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다들 실감했을 겁니다.
 
그 날 저는 8시 뉴스의 세컨드 탑(두번째 아이템)을 다뤘는데 제 기사의 앵커멘트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앵커멘트]
 
한국은행의 전격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장중 한때 900선이 붕괴되고, 코스닥은 사장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원달러 환율도 닷새째 급등했습니다.
 
이종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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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정말 어떤 호재가 터져도 주식시장은 회생하지 못하겠구나.....' 이런 생각 하신 분들 많으셨을 겁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한 경제 평론가가 그날 저녁 우리 SBS 나이트 라인의 <뉴스 속으로>라는 코너에 나와 자신의 마지막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날 인터뷰를 끝으로 더이상 입을 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평론가는 요즘 경제 상황과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여러 조언들을 했는데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말이었지만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에게 작게 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전합니다.
 
한 번 들어 보세요.
 
제목은  <시골의사의 마지막 훈수> 입니다.
 
질문) 요즘 시장 왜 백약이 무효인가?
 
답변) 시장에서 공포가 작동하고 있을 때는 대책이 나와도 투자자들이 즉각즉각 반응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다들 눈치를 살피는 거다. 저울에 달아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뭐가 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 템포 늦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 즉각 시장에 반영이 안되는 거다.

질문) 폭락 장세 속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답변) 비유를 들어 답변하겠다.
 
베트남 전쟁 당시 많은 미군이 포로로 잡혔는데 당시 미군 포로 중에서 제일 먼저 사망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근거 없는 낙관을 한 사람이었다. '우린 대미국이니까 금세 풀려 날거야' 이런 아무 근거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금방 사망에 이르렀다.

두번째는 극단적 비관을 한 사람들이다. '우린 풀려 나지 못할 거야. 죽고 말거야'라며 비관적인 면만 본 사람들이 뒤를 따라 금방 죽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끝까지 잘 버티고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냉정하고  합리적인 낙관론자들이었다. '지금 상황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해결될 거야'라는 굳은 낙관적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생환에 성공했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비관부터 낙관론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높고 편차가 커서 투자자들이 당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냉정하면서도 낙관론을 저버리지 않는 것.. 이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질문) 오늘 인터뷰를 끝으로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무슨 이유인가?
 
답변) 지금 우리 시장은 기업들도 저평가 되기 시작하는 등 상당히 중요한 지점에 도달했다.
 
호재에도 불구하고 시장 반응은 오히려 악화되는 등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지 모두들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상황이다.
 
이런 때일 수록 잘 훈련되고 방대한 리서치 인력을 가지고 있는 증권사나 투신사같은 기관 투자가들의 말에 기울여야 한다.
 
나를 포함해 경제를 조금 안다고 하는 장삼이사들은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말을 닫아야 한다.
 
합리적이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기관 투자가 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흩어져 있는 의견을 하나로 모아가야 할 상황이란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말을 할 때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말을 덜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늘을 마지막으로 나도 입을 닫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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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그리고 사흘 뒤인 10월 30일. 한국과 미국은 3백억 달러 짜리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면서 환율이 사상최대 폭으로 떨어지고 증시는 무려 115.75포인트 오르며 사상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물론 우리 금융시장은 아직도 혼란스럽고 불안불안하다.
 
하지만 시골의사의 마지막 훈수를 받아 들여 긍적적이고 낙관적인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보는건 어떨까. 

 

[편집자주] 경제부에서 국세청과 한국은행을 담당하고 있는 이종훈 기자는 2002년 SBS 공채로 입사한 뒤 사회부 법조팀과 시사고발 '뉴스추적'등에서 취재력을 과시해왔습니다.  최근 유명인들의 허위 학력이 사회적 문제가 됐을 때는 유명 문화계 인사의 논문표절을 특종보도해 그 심각한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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