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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 부시 실정·경제위기 못벗어나

페일린 지명.네거티브전략 등 승부수마다 패착

이번 미국 대선은 공화당 후보의 입장에서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최악의 조건에서 치른 선거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8년 집권의 성적표는 낙제수준이다. 이라크전과 북핵 문제의 대응은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네오콘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은 미국을 국제사회의 '왕따'로 만들었다.

존 매케인 후보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부시 대통령과 멀찌감치 떨어져 이어야만 했다. 매케인 지지를 호소한 딕 체니 부통령의 메시지가 민주당측에 의해 네거티브 소재로 활용되는 상황을 당혹스럽게 지켜봐야 할 정도였다.

결정타는 경제였다. 작년 8월 촉발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올해 9월 심각한 금융위기로 비화함으로써 매케인으로서는 전세를 뒤집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해보였다.

외부여건이 불리한 가운데서도 전국득표율이 48%(잠정)에 달한 것은 70대 고령의 매케인이 대단히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좀 더 냉정히 따져보면 매케인 진영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패인이 발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충동적 승부수마다 패착

패기의 버락 오바마와 차별화하려면 매케인은 경륜을 바탕으로 안정감있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야만 했다.

9월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40대의 '하키맘'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할 당시 공화당 수뇌부는 "무모한 도박"이라고 우려했지만 '페일린 돌풍'으로 지지율이 급반등하면서 매케인의 승부수가 주효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효과는 금융위기에 묻혀 채 한 달도 버티지 못했다. 게다가 페일린의 가족성원들과 그녀의 주지사 재임중 각종 스캔들로 인해 시너지 효과는커녕 지지율을 갉아먹는 역할을 했으며, 선거전 막판에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는 등 자중지란 양상마저 보였다.

언론 인터뷰에서 드러난 페일린의 대외정책의 인식 수준은 부통령으로서 유사시 대통령직을 대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으며, 이는 그녀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매케인의 판단력에 대한 우려로 비화했다.

9월 하순 구제금융 법안의 의회 통과가 지연되자 매케인은 대선후보 TV토론의 연기를 제안하고 유세를 중단, 워싱턴으로 달려가는 승부수를 던졌다. '국가를 최우선(country-first)'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여론의 반응은 오히려 분별없고 즉흥적인 행동이라는 쪽으로 흘렀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자포자기 식의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매케인의 이런 승부수들은 안정감있는 노련한 후보라는 이미지보다는 판단력에 문제가 있고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인식만을 심어준 셈이다.

◇경제이슈 천착에도 실기

외교와 군사 문제에서 전문가임을 자처한 매케인은 경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외정책 부문에서 높은 평점을 받는 것으로 경제문제에 대한 낮은 평가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너무 의존한 것이 한가지 패인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문제는 바로 경제'였고, 진작부터 경제이슈에 매달렸어야 했으나 시기를 놓친 것이다.

게다가 경제문제에 관한 본인의 잦은 실수도 문제였다. 금융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매케인은 "미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고 발언, 역풍을 맞았다. 경제학도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대선 후보의 코멘트로는 시의적절치 못했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한때 "내 집이 몇 채인지 나도 잘 모른다"는 실언과 500달러가 넘는 구두를 신는다는 뉴스로 홍역을 치른 매케인은 경제문제에 관한 한 언제나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경제문제에 포커스를 맞춰 오바마의 세금인상과 재정지출 확대를 물고 늘어졌지만 전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연 25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에 높은 세금을 물리겠다는 오바마의 공약을 공격하기 위해 선거전 막판에 '배관공 조'를 등장시켜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배관공 조'는 애초 배관공사 면허도 없고 세금이 체납돼 있는데다 연소득이 25만달러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인물로 알려지면서 결국 매케인의 또 다른 '헛방'으로 끝났다.

◇식상함만 준 네거티브 선거전략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초당적인 정책협력을 표방하면서 '매버릭(이단아)'을 자처해온 매케인은 낡은 워싱턴 정치판의 대대적인 개혁을 공언했다.

이런 개혁은 당파적 이해관계에만 골몰, 상대방을 헐뜯는 풍토를 혁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지만 대선레이스에서 매케인 스스로가 보여준 행태는 낡은 워싱턴 정치풍토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9월초 전당대회 직후 반짝 우위를 보였던 지지율이 경제위기로 다시 곤두박질치자 매케인측은 철저히 네거티브 선거전략에 집중했다. 자동 전화시스템을 이용해 선거홍보용 음성메시지를 전달하는 로보콜을 이용, 오바마를 과격테러리스트와의 관련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막판에는 과격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와 오바마를 연계시킨 네거티브 TV광고를 쏟아냈다.

매케인은 유세중 자신의 공약과 비전을 홍보하는데도 애를 썼지만, 오바마의 정책의 맹점을 비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부시의 8년 집권을 가능케 한 공화당의 선거전략가 칼 로브의 양극화 전술과 네거티브 책략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이 매케인에게서 식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빗나간 부동표 공략

전체 유권자들 가운데 민주·공화 양당의 골수지지층은 각 40% 정도다. 양당 후보로서는 골수 지지층을 뺀 나머지 20%의 부동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이런 부동층은 최근 수십년간의 대선에서 갈수록 엷어지는 추세였다. 2004년 대선때는 투표일 1주일을 앞둔 시점까지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9%에 그쳤다.

매케인으로서는 부동층 가운데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도 전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희박한 처지였다. 게다가 과거 미국의 각종 선거사례에서 볼 때 특정 후보가 부동표의 60-70% 이상을 챙겨간 전례가 없었다.

결국 부동층보다는 오바마 후보 지지층 가운데 충성도가 다소 약한 유권자들을 체계적으로 공략, 표심의 이반을 이끌어냈어야 했지만 신기루에 가까운 부동층에만 집중하다 집토끼마저 놓치면서 결국 선거인단 집계에서 완패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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