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규제완화를 외치며 여러 차례 정부를 비판했던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100일 동안 계속된 촛불집회로 대통령 마음이 많이 소심해졌다', '용기도 잃었다'며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은 경제를 살리라고 뽑은 것인데 경제를 살리려면 수도권 규제를 푸는 방법밖에 없다'며 '대통령은 경제 살리는데 무엇이 두렵냐'고 이명박 대통령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달이 지난 10월 30일, 정부는 청와대에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어 수도권의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는 내용의 '국토이용의 효율화방안'을 확정발표했다. 김 지사의 압박도 압박이었지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더 강했다.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고 내수를 활성화시켜 경제위기를 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셈이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미흡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반면 비수도권 지자체는 무늬만 국토이용 효율화 방안일 뿐 실제로는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으로 지방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특히 수도권과 인접해 있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충청권의 반발이 컸다. 자유선진당은 지난 31일 당5역회의와 긴급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총력 저지를 결의했다. 또 기자회견에 이어 국무총리실을 항의방문하는 등 기민한 대응을 보였다. 이회창 총재는 정부가 눈앞의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근본을 깨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민주당은 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이 다시 수도권으로 역류할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열린 국회 균형발전 특위에서도 수도권 규제완화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여야로 나뉘어 공방이 펼쳐졌겠지만 이날 만큼은 비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일제히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을 향해 포화를 퍼부었다.
정치권이 일제히 들끓자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는 내수진작과 투자활성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면서 조만간 지방 경제 활성화 대책도 곧 뒤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비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번 조치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경제가 다 죽게 됐다'는 말부터 '정부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해도 지방과의 합의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말까지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한마디로 정치권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정치권이 하는 일 자체가 사회의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를 하나로 녹여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일은 좀처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지역이익을 대변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존권을 부르짖는 지역주민과 그들의 표에 정치생명이 걸린 정치인 모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13개 비수도권 시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이달 중으로 대규모 장외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조정해야 할 국회와 정치권은 같은 당내에서조차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대안은 커녕 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충청권을 사수해야하는 자유선진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양쪽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또 정책성향이나 의석분포로 봐서 상대적으로 수도권 민심에서 자유로운 민주당도 신경이 쓰이긴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도 그 중 하나다. 각자 이론적 근거는 다 갖고 있다.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하나? 확실한 건 사회가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나뉘어 싸우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분단'과 '지역 감정'만으로도 이미 견디기 벅차다.
조금만 고쳐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다. 한 수도권 의원의 고민이 해법이 될 지 모르겠다.
"경기도에 있는 공장들이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이것 만큼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사실 수도권을 묶어둔 지난 4년 동안 6천여개의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갔지만 지방으로 간 기업은 고작 300여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효율성을 따지기에 앞서 지방 주민들에게는 그렇게라도 이전해 온 기업 한 개가 그들의 전부라는 말을 듣고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접점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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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예리한 시각과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남승모 기자는 2000년 SBS 공채 8기로 입사해 사회부,경제부를 거쳐 정치부 정당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특유의 적극성으로 활발한 현장취재를 통해 복잡한 정치 현장의 맥을 짚어주는 기사들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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