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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 반장] '10월을 보내며..' 국감 단상

정치부 정반장, 정준형 기자입니다.

대학 다닐때 꽤나 활동적인 동아리에 참여해 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해마다 9월이나 10월에 동아리 차원의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대학 1학년때는 수업이고 뭐고 다 뺑개치고 거의 1년을 꼬박 가을 행사만을 위해 준비하다시피 보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학생들 뒤로 남겨진 썰렁한 객석을 보며 아쉬움과 함께 허탈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청년시절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무렵 캠퍼스를 거닐때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던 노란 낙엽들은 왜 그리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었는지요.

특히나 몇개월 뒤 강의실 바깥에서 열심히 흘린 땀의 대가로 날아온 경고장 붙은 학사 성적표를 붙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방송기자가 돼서 일하면서도 비슷한 경험들이 많았습니다.

대형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 며칠씩 집에 가지못하고 정신없이 밤을 새워가며 일하다가 사태가 수습된 뒤 동료들과 술 한잔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갈때면, 늘 가슴 한켠에서는 웬지 모를 허탈감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하루종일 힘들게 취재하고 제작해서 만든 리포트가 전파를 타고 방송된 뒤, 연기처럼 날아가버린 듯한 느낌이었죠.

여러분께서도 살아오시면서, 회사일이나 사업, 큰 시험 등을 통해 경우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18대 정기국회 첫 국정감사가 10월 25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의 경우 10월 6일부터 20일동안 진행됐습니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에게 1년에 한번 돌아오는 큰 행사요, 잔칫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해마다 6~7월이 되면 가을 정기국회 국정감사 준비에 본격 착수합니다.

올해의 경우 국회 원구성이 늦어지면서 국정감사가 10월 6일부터 시작됐습니다만, 원래 국회법에는 매년 9월 10일부터 20일동안 국정감사를 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각 의원들과 의원 보좌관들은 해마다 7~8월을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무더위 속에서 국정감사를 준비하느라 눈코틀새 없이 바쁘게 보냅니다. 특히 국정감사 20일동안 의원 보좌관들의 경우, 의원회관에서 질의 준비를 하느라 날밤을 새우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국정감사 기간동안 국회를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 역시 각 상임위 일정을 쫓아다니고, 중요한 국정감사 자료를 챙기기위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 국정감사가  끝났습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국회에도 2~3일 정도 잠시 평온함과 여유가 흘렀습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뒤 찾아온 꿀맛같은 휴가랄까요? 국정감사에 몰입했던 국회의원과 보좌관들, 취재경쟁을 벌였던 기자들 가운데 각자 했던 일에 대해 아쉬움과 허탈감을 느끼는 분들이 상당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국정감사를 놓고도 이런저런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정책감사가 실종되고 정쟁과 파행으로 얼룩졌다는 비난일 겁니다.

국정감사 막판엔 야당 의원의 졸개발언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막말 파문이 빚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와함께 20일동안 수박 겉핥기식의 국정감사였다는 지적과 함께 상시 국정감사제나 격년 국정감사 등 국회차원의 제도 개선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제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만 국정감사가 있다며 이럴바에야 국정감사를 아예 없애자는 국감 무용(無用)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국감 무용론과 관련해, 정치부 기자로서 수년동안 국정감사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은 있지만, 국정감사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지만, 국정감사때면 왜 그리 많은 정부기관과 공기업들의 문제점들을 쏟아지는지요.

특히 국정감사때 지적된 사항들이 그 다음 국정감사때까지 하나도 고쳐지지않고, 똑같은 잘못이 다시 지적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혈세를 아무렇지않게 펑펑써대는 정부기관과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실태를 보노라면, 기자이기에 앞서 국민의 한사람으로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도 있습니다.

일부에서 선진국의 사례를 들기도 합니다만, 선진국들과 달리 정부기관의 투명 경영 시스템이 확립되지않은  상황에서는 '수박 겉핥기식'이나마 그래도 국정감사를 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와함께 기자로서 우리 언론의 문제점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국정감사 기사와 관련해 언론 보도는 주로 여야의 정치공방을 부각시켜 보도합니다.

그런데 정작 왜 공방이 일어났는지, 공방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기사를 다룰 때가 많습니다.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지 않기위해 기계적 중립성을 강조하다보니, 여야 가운데 누가 문제인지가 분명하지 않고, 이도 저도 다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도가 되곤 합니다.

시청자나 독자들이 볼땐 어떨까요? 정치인들이라는게 늘 악악대며 싸움만 하듯이 보이고, 다 똑같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 바람에 막상 문제의 본질은 정쟁에 묻혀버리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감만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국정감사 제도개선 관련해서는 정치권과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게 아니라, 언론의 자기반성이 뒤따라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하나 제도개선도 중요합니다만, 그에앞서 정치문화부터 성숙하게 바뀌어야 하겠죠.

그렇다고 어느날 갑자기 국회의원들에게 "당신들 이렇게 하시오"하고 한다고 해서 정치문화가 바뀔까요?

어릴때부터 상대방을 존중하고,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문화를 길러줘야할 것입니다.

다시말해 성숙한 정치문화는 정치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이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겁니다.

"정 기자, 당신부터 제대로 기사 써야지, 여기서 말만 번드레하게 하면 됩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언론인들에게 희망을 가져주십시오"

 

[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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