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한국은행, 금융불안 '구원자'로 부상

'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이 계속되는 금융불안 속에서 해결사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위기로 번지고 급기야 부도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국내 금융시장도 자금 경색이 심화하자 정부는 물론 은행과 증권사 등 2금융권까지 모두 한은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정부가 은행의 대외채무에 대해 지급을 보증하고 한은이 지난 23일 총액한도대출을 2조 5천억 원 늘리는 등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여기저기서 한은에 손을 벌리고 있다.

당장 금융감독당국과 시중은행들은 은행채를 사들여 달라고 한은을 조르고 있고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환매요구에 대비해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모두 중앙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한은이 발권력과 외환보유액을 가진 '은행의 은행'이자 최종 대부자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정책 결정을 내려도 한은이 곳간을 열지 않으면 소용없다.

과거 외환위기 때는 지금처럼 한은의 위상이 높지않았다. 당시에는 외환보유액이 300억 달러도 채 되지 않아 곳간이 바닥난 상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에는 한은은 IMF 프로그램에 따라 오히려 원화 유동성 조이기에 들어가야 했다.

1997년 당시만 해도 한은 금통통화위원회 의장 자리가 재무부 장관 몫이었지만 1998년 한은법 개정 이후 한은 총재로 바뀌면서 정부의 입김이 줄어든 점도 달라진 점이다. 지금은 정부가 주요 의사 결정에서 한은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은이 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한은은 금융위기에 대비해 나름대로 컨틴전시(비상) 플랜을 갖고 있지만 이를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은 공개시장조작과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금리 결정 등 크게 3가지다. 은행채 매입이나 증권사에 대한 유동성 공급도 관련 규정을 손본다면 가능하다.

한은 관계자는 "비상시에 한은이 어떤 정책을 쓸 것인가가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면서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한은법을 근거로 다양한 정책 수단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법 65조는 통화와 은행업의 안정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중대한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증권 이외에 자산을 담보로 대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평상시라면 한은은 증권 재할인 등이나 증권을 담보로만 대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전쟁이나 공황 때문에 예금자의 막대한 예금 인출로 금융기관의 준비금이 부족해 영업을 정지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방지하거나 전산장애 등 예기치 못한 사고로 금융기관의 지급자금이 일시적으로 부족할 때 금통위가 적격성을 부여한 자산을 담보로 대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은법 80조를 보면 금융기관이 아닌 일반 기업(영리기업)에 대해서도 대출해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해 신규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에 한한다는 전제가 달렸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법을 토대로 창의적인 정책 수단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머니마켓투자펀드기구(MMIFF)를 만들어 기업어음(CP)과 양도성예금증서(CD)를 매입하기로 한 것처럼 상황에 따라 '예상 밖의' 정책 수단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은으로서는 금융기관의 요구대로 지원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퍼주기를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고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는 논란을 우려하고 있다. 돈을 무분별하게 풀 경우 인플레이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고민스럽다.

한은은 창립이래 지금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칼날 위를 걷고 있다. 한은의 처방으로 현재의 극심한 금융불안이 어느 정도 통제된다면 다행이지만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경우 한은은 후유증이나 후폭풍에 무방비로 노출돼 졸지에 '실패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