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여의도 정 반장] "팍팍한 삶, 누가 보듬나?"

정치부 정반장, 정준형 기자입니다.

지난 18일 새벽 5시반쯤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무허가 주거용 컨테이너에서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 났습니다. 이 불로 당시 컨테이너 안에서 잠자던 57살 박모 씨 등 네사람이 모두 연기에 질식해 숨졌습니다.

불이난 컨테이너는 27 평방미터(8평)쯤 되며, 화장실과 침실로 나눠져있었다고 합니다. 숨진 네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화장실 안에서, 나머지 세사람은 침실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불이 났을 당시, 좁은 컨테이너 내부 벽면에 대놓은 합판에 빠른 속도로 불길이 번지면서 생긴  유독가스에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숨진 박 씨 등은 20년 가까이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사이로 고물상 일을 돕거나 일용직 노동을 하며, 서로가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또 최근엔 경기가 좋지않아 일자리가 없어 힘들어했고, 사고 전날도 밤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치부 기자가 뜬금없이 웬 컨테이너 화재 이야기냐하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텝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극빈층의 주거용으로 불법개조된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네사람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고, 의지할 곳 없이 살아왔을 네 사람이 전날 밤 마지막이 될지 몰랐을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모습들, 그리고 변을 당할 당시 처참했을 상황들을 그려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아팠습니다.

죽은 분들에게 가족이 있었을까?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렇다고 당장 해줄수 있는 부분도 없고, 그저 안타까웠습니다.

이틀 뒤인 지난 20일엔 서울 강남구의 한 고시원에서 30살 정모 씨가 "세상이 싫다"며 자신이 거주하던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불을 피해 나온 사람들을 향해 마구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모두 6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워낙 크게 보도된 사건인지라 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컨테이너 화재 사망 사고이후 이틀 뒤 나온 고시온 흉기난동 사건 역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죽인 정 씨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또 나오지 않을까?

정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람들 역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정 씨와 처지가 크게 다를바 없는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중국에서 돈을 벌겠다고 한국에 와서 억척스럽게 살아오던 조선족 여성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일정한 직업없이, 하루하루를 아무런 희망없이 살아온 용의자 정 씨만 욕한다고해서 끝날 사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컨테이너 화재 사망 사고와 고시원 흉기난동 사건의 희생자들과 용의자 모두, 우리사회 밑바닥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사건의 원인은 비단 희생자와 용의자만의 부주의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원인이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이 두 사건과 여의도 정치를 잠시 겹쳐 봅니다.

두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논평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권에서.

이번 두 사건은 한번쯤 원인을 짚어보고, 제도적으로 개선할 점은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반인들이야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다"라는 말을 하고 지나쳐버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정치를 하겠다는 위정자라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사건들일 것입니다.

지난 2003년 7월 인천시 부평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세자녀를 아파트 복도 밖으로 내던져 숨지게 한 뒤, 자신도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고, 일부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숨진 가족의 명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서 서민들의 삶도 더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불법개조된 컨테이너, 그리고 고시원 참사, 정치권이 진정 보듬어봐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각성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