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 반 정원이 18명 가량이고 교실 곳곳에 푹신한 소파가 있어 편안한 자세로 수시로 독서.
어머니와 저, 아들 3대로 구성된 제 카이로 식구 가운데 이 곳 생활을 가장 즐기는 축은 올해 12살 난 아들 녀석입니다.
한국에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학원, 과외 순례에 늘 지쳐 있다 이 곳에서 미국학교에 다니며 물 만난 고기마냥 활개치며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집 근처에 있는 CAC (Cairo American College)라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데 모아놓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8월에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가정통신문이 날아 왔습니다.
내용은 제 상상과 정반대였습니다.
*잠을 9시간 이상 충분히 재워라.
*공부로 스트레스 받지 말게 하라.
*가정에서 학과 공부는 한 시간 이상 시키지 마라.
*대신 책을 많이 읽게 하되 (가급적 부모도 함께) 모국어로 된 책을 영어책과 동일한 시간 읽게 하라.
이따금씩 아들에게 물어보니 수업도 꽤나 느슨하게 진행되고 숙제도 아예 없는 날이 절반, 있는 날도 하루 30분이면 모두 끝낼 수 있는 분량입니다.
물론 시험도 없습니다.
대신 방과후 활동이 활발합니다. 1인당 3개까지 선택하게 하는데 아들은 <연극>과 <보드게임>, 그리고 <수학 & 과학 재미있게 공부하는 법>을 선택해 매일 오후를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축구와 야구 리그를 조직해 팀별로 리그전을 치릅니다.
정식 유니폼도 지급하고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코치를 맡아 제법 그럴듯한 전술도 구사해 아들 녀석은 주말마다 축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천연잔디 구장에서 주말마다 리그전을 치르는 아이들. 승패와 실력에 관계없이 고루 뛰게하는 게 원칙*
늘 밝은 표정에 학교 생활을 즐기는 아들을 볼 때면 저 역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때로는 이렇게 방목하다 귀국하면 3년동안 스파르타식으로 단련된 또래들에게 치여 고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때는 이렇게 공부에 스트레지 받지 않고 다양한 취미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게 길게 보면 분명 나을 거란 믿음이 아직까지는 더 강합니다.
한가지 걱정은 서울의 학생 노릇을 지긋지긋하게 경험한 아들이 귀국할 때쯤 잔류 선언이나 영어권 유학을 고집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바쁜 핑계로 한국에서는 애비 노릇 제대로 못하다 이곳에 와 부쩍 아들과 친해진 터라 몇 년씩 혹은 아예 나머지 인생 대부분을 아들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 신세는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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