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의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학살된 '여순사건'이 발발한 지 오는 19일로 만 60년이 된다.
지난 2005년 여순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은 진실 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순사건이란 = 1948년 10월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파병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어 여수·순천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 등에서 군·경과 무력 충돌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미·소 양군에 의한 한반도의 분할점령과 민족 간의 이념적인 대립과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벌어진 현대사의 비극이다.
국방경비대 반란군과 지방 좌익에 의해, 또 이들과 진압군 간의 무력 충돌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됐고 진압 이후에도 무고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반란군 협조자로 지목돼 희생자가 속출했다.
여순사건 때 인명피해나 물적 피해를 정확하게 기록한 자료는 아직 없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1948년 11월 전남도 보건 후생당국의 피해조사에 따르면 전남 동부지역 사망자가 2천633명, 중·경상자 1천516명, 행방불명자 825명이다.
그러나 피해조사가 이뤄진 후인 1949년 1월 일부 지역에서 수백 명이 집단 학살된 점 등으로 미뤄 1만 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유족들은 추산하고 있다.
◇오랜 세월 '침묵'..57년만에 진상규명 착수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온 1950년 6·25전쟁과 이후 30여 년 동안 이뤄진 철권통치 하에서 '한반도 귀퉁이'에서 발생한 아픈 역사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당시 희생된 민간인의 일부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라고 낙인찍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남몰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유가족들과 관련 단체들은 1998년 여순사건 50주기 행사를 했고, 희생자들이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여수시 호명동과 장계골에서 발굴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유족들과 관련단체들은 2000년부터 5년간 국회와 정부 등을 방문하면서 특별법 제정 운동을 전개했고, 2005년 12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 발효되는 결실을 봤다.
여순사건이 발발한 지 57년 만에 정부가 진실규명에 착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과 올해 전남 구례군 봉성산, 순천시 구랑실과 매곡동에서 당시 여순사건 사망자로 추정되는 일부 유해를 발굴했으며 특별법 시효가 만료되는 내년 11월30일까지 유해 발굴과 진실 규명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명예회복 등 진상규명 이뤄져야"
특별법이 제정된 지 3년이 흘렀지만 희생자들의 피해실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유족들과 관련단체들의 주장이다.
일부 유해가 매장된 곳만 발굴할 게 아니라 당시 피해를 본 전남 동부 지역 일대 마을을 모두 조사해야 하고, 민간인이 집단 학살될 곳에 대한 보존방안도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위령탑 건립과 공원 조성 등 추모 위령 사업이 시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희생된 국방경비대 반란군과 진압군, 이들의 무력 충돌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 모두 '역사의 피해자'로 봐야 하기 때문에 민간인들뿐 아니라 당시 이념적 소용돌이 속에서 스러져간 군인과 경찰관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주철희 소장은 12일 "여순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유족들과 지역민들은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며 "여순사건이 슬픈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상생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역사적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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